소록도, 살아서는 다시 육지를 밟을 수 없는 나병환자들이 살던 곳. 자고 일어나면 발가락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살이 썩고, 뼈가 녹는다는 병. 소위 ‘문둥병’이란 불리던 ‘한센병’ 환자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 작은 섬에 버려졌고 처참한 환경 속에서 인간적 모멸감과 고통스런 노역으로 죽어갔다.
1962년, 저주받은 이 섬에 젊은 외국인 수녀가 찾아온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는 6,000명의 환자들을 고작 5명의 의료진이 돌보고 있는 열악한 현실을 보고 운명처럼 이곳에서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접촉을 기피하는 환자들을 두 수녀는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고 상처를 소독해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한 달에 한 번, 환자들은 섬 안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단장을 하고 나선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족해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소록도의 환자들은 고통스런 병마와 싸우면서도 서로 눈이 되고, 손이 되어 돕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 모습 속에 두 수녀는 절망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희망을 본다.
어느덧 20대의 꽃다운 아가씨에서 70대의 노인이 된 두 수녀는 늙은 자신들이 소록도 사람들에게 짐이 될까 홀연히 낡은 배에 몸을 싣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저희들이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라는 편지만 남긴 채 올 때처럼 낡은 가방 하나만을 메고서. 40여년을 병든 자들과 함께 보낸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인간이 얼마나 고결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인지를 이 그림책은 보여준다.
색연필과 연필로 수많은 선들을 쌓아 그린 그림은 부드러운 빛으로 아픈 이들의 주변을 감싸듯 절망과 기도, 눈물과 웃음을 고스란히 담아 냈다. 화가 장호는 불과 1년 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선하고 해맑은 그의 웃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다. 화가는 고통스런 투병 중에도 틈틈이 수술로 변해버린 자신의 얼굴과 그리운 이들의 모습을 스케치북 위에 그렸다. 두 수녀가 실천한 삶이 하느님의 소명이었다면, 항상 낮은 곳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자 했던 화가는 그림으로 세상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화가 장호는 넓은 하늘 배경 위에 수채화를 그리며 여전히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소윤경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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