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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천만 관객 시대

입력
2015.07.3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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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인다. 가공된 물성이 있고, 그로 인한 착각이 있고, 그로 인한 여운이 있다. 그건 삶에 대한 물리적 공작이다. 감각을 극대치로 올려 감각을 자극하고 허구를 극대치로 꾸며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의 진짜 핍진성은 이건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설득시키는 데 있다. 그건 전혀 공공적이지도 않고, 문화발전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떤 예술가의 꿈일 뿐이다.

꿈이 공공의 것이 될 수 있을까. 답은 유보하자. 그 전에 문화발전이란 말부터 없애자. 문화는 국위선양의 도구도 아니고, 정치실적도 될 수 없다. 문화는 맹목이다. 맹목엔 계산도 답도 없어야 한다. 어떤 개인이 극장에 앉아 자기통찰을 제멋대로 실행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스크린엔 그 어떤 공공재도 없다. 극장은 이를테면 돈 내고 꿈꿀 장소다. 아무리 같은 스크린, 같은 형식이어도 사람의 꿈과 사람의 용틀임마저 같을 순 없다.

인구의 4분의 1이 한 달에 똑같은 화면을 들여다보면서도 그게 뭐가 문제인지 깨우치지도 못하는 나라라면, 그게 삶의 빈틈을 위로하는 나라라면, 그 어떤 희망도 없다. 비단 영화만의 얘기 아니다. 시 쓰는 입장에서 지하철 스크린 도어 시를 보면 시 쓰기 싫어진다. 부디, 문화를 위한 아무 제스처도 말고 돈다발이나 세는 게 솔직할 것 같다. 이런 나라는 망하는 게 옳다고 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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