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잡지에서 스타들의 패션과 스타일링 란을 읽는다. 해외 파파라치들은 유명 연예인의 운전, 운동, 쇼핑, 식사, 데이트에 이르는 일거수일투족을 소셜네트워크에 올린다. 그들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사용하는 각종 제품을 소개하고 가격도 함께 올린다. 신기한 건 대중이 파파라치에 보답하듯, 소개된 상품을 광적으로 팔아준다는 것.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얻은 유명 인사의 몸값이 사물의 가격과 소비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다. 우리는 이들을 셀러브리티라고 부른다. 셀러브리티(Celebrity)란 단어에는 유명인, 명성이란 뜻이 담겨있다. 이 말의 라틴어 어원은 셀레브리타템(Celebritatem)인데 명성의 조건이란 의미다. 명성의 조건은 ‘사람들이 한 눈에 알아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시대는 자신의 능력으로 특정 분야에서 성과를 낸 이들을 칭송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에서 두각을 드러낸 운동선수들에게 빠져들었다. 고향에서는 노래와 산문을 지어 그들을 찬양하고 음식과 향응을 제공했다. 로마에선 극장의 배우와 검투사, 황제가 셀러브리티였다. 동전에 그들의 얼굴을 조각해 유통시켰다. 특히 검투사의 인기는 놀라왔다. 어떤 귀족들은 검투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는가 하면, 잘생긴 검투사들은 로마의 귀족여성들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이런 행동은 당시 기준으로 이혼사유였지만 로마 여성들은 근육질의 검투사들에 끌렸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소형 손거울이 발명되고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타인의 옷차림과 제스처, 표정을 따라하고 경쟁했다.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의 자의식을 키웠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금융으로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여인들이 셀러브리티였다. 당시의 초상화를 보면 면면이 화려하다. 서민의 집 한 채에 맞먹는 씨알진주 700여개를 달아 만든 드레스나, 담비 털로 만든 팔 토시인 제펠린은 피렌체를 휩쓴 유행패션이었다. 메디치가의 여인들이 당대의 패션코드를 규정한 셈이다.
배우나 연예인 중심의 셀러브리티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20년대부터 50년대 사이다. 마릴린 먼로의 글래머러스하고 섹시한 스타일,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스타일, 그레이스 켈리의 기품 있는 패션은 연예계 중심의 셀러브리티 패션의 기초를 마련했다. 특히 대공황 시절 사회 내부에 가중된 불안과 빈곤을 환상의 힘으로 극복하려 한 대중들은 극장에서 만나는 스타들의 패션과 스타일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그들의 화려한 패션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은 여성들의 모방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모방의 법칙’에서 “모방은 일종의 최면상태와 같은 꿈”이라고 주장한다. 1920~50년대 할리우드는 관객의 꿈을 조종했다. 단 꿈 속 패션을 따라하는 모방행위를 자발적이라고 믿게끔 했다. 이 전략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런 경향에 금이 가고 있다. 외국에선 여자 배우의 이름을 딴 셀러브리티 향수 매출이 점점 줄고 개인이 각자 조합해서 사용하는 수제향수의 매출이 늘고 있다. 영국에선 한 인디밴드가 만든 향수가 럭셔리 브랜드의 향수매출을 사뿐히 건너뛰었다. 방송과 매체에서도 공중파의 역할은 줄어들고 이 틈을 1인 방송이 메우고 있다. 기존의 셀러브리티가 제품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이미지가 가진 ‘3자 승인’의 힘에 있었다. 하지만 대형기획사가 주조해낸 연예인들의 획일화된 모습과 한정된 콘텐츠에 대중은 질식했다. 작가와 PD, 연예인이 하나로 합쳐진 1인 창작자들이 속속 스타로 등장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만들어진’ 것들보다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에 점수를 주는 것 같다. 전통적 의미의 셀러브리티의 시대가 가고 있다.
김홍기·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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