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7% 증가 1만 27건 확인
사망자도 안줄어 매년 10명 희생
가해자 82% 부모… 양육기술 미숙
전문가 "생애 주기별 교육 필요"
서울에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던 중학생 A(16)양은 온 몸이 멍투성이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하는 또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는 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수시로 때렸다. 귀가가 조금이라도 늦을 때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졌다. “정신 차리게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겠다”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다리와 허벅지에 피멍이 든 A양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여름철에도 긴 바지를 입고 다녔다. 3년 가까이 진행된 학대는 학교 선생님의 신고로 막을 내렸다.
강원도에서는 계모가 6살 난 아이를 지속적으로 때리고 학대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해자인 40대 여성은 또래에 비해 한글을 늦게 깨우친다는 이유로 B양의 머리와 엉덩이를 옷걸이와 걸레자루로 수 차례 때렸고, B양을 집에 혼자 두고 밥을 챙겨주지 않는 등 돌보지 않았다. 결국 다리를 절며 걷는 아이를 이상히 여긴 아파트 경비원의 신고로 아동학대인 게 드러났고, 가해자는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처럼 학대를 받는 아동이 지난해 1만명을 넘어서 역대 최대치로 집계됐다. 아동 1,000명 당 피해 아동도 처음으로 1명을 넘었다.
30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4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전년대비 36% 증가한 1만7,791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확인된 사례는 전년대비 47.5%나 많은 1만27건으로 조사됐다. 실태조사가 시작된 2000년 이래로 학대 당한 아동이 1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학대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아동학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면서, 신고가 늘어 발견되는 아동학대 사례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우리사회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은 2013년 울산에서 계모의 상습 폭행으로 초등학생이 숨진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9월부터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형량을 강화하고 신고의무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로 사망한 어린이의 수는 지난해 14명으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10년 간 아동학대로 사망한 어린이는 총 101명으로, 매년 10명의 아동들이 학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부모가 81.8%(친부 45.2%, 친모 32.0% 등)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부모가 아동을 학대한 이유로는 양육기술 미숙(33.1%),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20.4%), 부부 및 가족 갈등(10.0%)이 크게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아동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돼야 아동학대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 하는데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아이를 소유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결혼 전 예비 부모 교육을 받게 하는 등 생애주기별 부모 교육을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고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동학대를 막을 수 없다“며 “아동학대 문제가 빈곤, 가족해체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돕는 사회 지원책도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채지선기자 le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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