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 18일의 만주사변 전만 해도 일본 언론들은 일본 군부(軍部)의 만몽(滿蒙ㆍ만주와 몽골)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만주 주둔 관동군(關東軍)이 일본 내각의 승인 없이 만주를 침략하려 한다는 사실을 일본의 봉천(심양) 총영사가 알고 외무성에 보고했다. 외상은 조선총독을 역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 육군대신에게 관동군을 자중시킬 것을 요구했다. 미나미는 작전부장 다테가와(建川美次)를 만주에 보냈는데, 확전을 지지하던 다테가와는 9월 15일 비행기 대신 일부러 기차를 이용해 느릿느릿 만주로 향했다. 도쿄 출발 사흘 후인 9월 18일 오후 7시에야 심양에 도착했다. 관동군 참모 이타가키 세이지로(板垣征四郞ㆍ도쿄 전범 재판 때 사형)는 다테가와를 요정으로 데려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끌었다. 드디어 밤 10시20분 심양 호석대(虎石台)에 주둔하는 관동군 독립수비대의 가와모토(河本末守) 중위 등은 심양 북쪽 7.5㎞ 유조호(柳條湖) 부근 남만철도의 선로를 끊었다. 요정에서 다테가와와 술을 마시다 이 보고를 들은 이타가키는 “장학량 군대가 공격했다”면서 뛰쳐나가 심양의 북대영(北大營)을 공격하게 했다. 만주사변의 시작이었다. 관동군은 다음 날 심양을 점령하고 봉천특무기관장 도이하라 겐지(土肥原賢二ㆍ도쿄 전범재판 때 사형)를 임시 시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들의 만주점령 계획은 관동군사령관 혼조 시게루(本庄繁)가 확전을 거부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혼조 시게루가 이타카키의 끈질긴 설득 끝에 21일 새벽 관동군의 출병을 명령하면서 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갔던 비극이 시작되었다.

혼조 시게루는 1945년 11월 20일 전범으로 체포령이 내려지자 육군대학교 내에서 할복자살했는데, 이때 관동군 출병을 끝까지 거부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혼조 시게루가 출병을 승인한 9월 21일 새벽부터 일본 언론의 논조가 180도 달라졌다. 일제히 관동군의 만주침략을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아사히신문·도쿄니치니치신문·지지신보 등은 20일 조간부터 과거의 논조를 손바닥처럼 뒤집으며 관동군의 발표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기 시작했다. 침략의 주역들은 언론에 의해 졸지에 영웅으로 떠받들렸다. 1929년 대공황의 여파가 이 무렵 일본 경제를 덮쳤다. 관동군 참모들이 탈출구로 마련한 ‘만주특수’가 일본 언론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것이다. 이후 소화(昭和)유신이라고도 불리는 군국주의 열풍이 일본 전역을 뒤덮었다. 군국주의 열풍은 특별히 두 세력을 적으로 겨냥했다. 일본의 각 정당들과 의회 격인 추밀원이었다. 언론이 군부 편을 들면서 정치혐오증이 극성을 부리자 두 세력은 갈 곳이 없었고, 군부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만주→중국→동남아→미국으로 확전을 거듭하다가 1945년의 패전을 맞았다. 패전 후 일본 언론들은 이에 대한 반성으로 국민들을 한쪽으로 몰고 가는 선동적 보도를 금기로 삼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정치와 국회혐오증에는 이를 통해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기득권 세력의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 특히 유신 정권은 정당과 국회를 국가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세력으로 공격했고, 정치와 국회를 크게 위축시켰다. 현재 국회와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불신을 사는 이유 중에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도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인구편차가 심한 현행 선거구 획정에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림으로써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해졌는데, 차제에 국회의원 선출 제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유권자의 표심이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이 제도는 유권자가 아니라 당의 보스나 계파 수장에게 복종하는 국회의원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 기반이 취약한 이념정당이나 정책정당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도입일 것이다. 독일 역시 우리처럼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와 정당에 한 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체 의석수 300석에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각각 150석씩 선출한다고 가정할 경우 정당득표율에 따라 총 의석배분이 결정된다. A정당이 20%를 득표했으면 지역구 및 비례대표를 포함해서 모두 60석을 차지한다. 지역구 당선자가 정당득표율에 따른 총 의석수보다 많을 경우 전체 의석수가 조금 늘어날 수는 있다. 이 제도의 장점은 정당지지율이 그대로 의석수로 나타나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정확히 반영된다는 점이다. 또한 거대정당의 출현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지역 기반이 취약한 이념정당이나 정책정당을 출현시킬 수 있다. 현행 선거구제 개편의 핵심은 국회의원 수의 증감이 아니라 유권자의 표심이 정확하게 국회 의석수로 반영되는 제도로 개편하는 것이자 지역적 기반이 없는 이념정당, 정책정당들의 국회 진출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근대적 정당제도가 정착되고 국회도 국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게 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