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 70주년, 역사의 교훈 돌아봐야
희망을 상실한 우리 사회 우려스러워
미래의 70년 위한 논쟁 벌여봤으면
내일부터 광복 70년의 8월이 시작된다. 광복 70주년은 10년 단위로 치러지는 의례적인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해방과 정부 수립,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가 지난 70년의 역사였다. 1876년 개항에서 1945년까지가 나라를 상실해갔던 시간이었다면, 1945년 해방부터 현재까지는 나라를 새롭게 세워온 시간이었다. ‘상실의 70년’에 ‘회복의 70년’이 더해지는 시점이다.
광복 70년을 돌아보며 세 개의 8월을 주목하고 싶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0일 일본은 항복 의사를 전달했고, 15일 우리나라는 그토록 염원해온 해방을 맞았다. 25일 미국은 인천에 상륙해 미군과 소련군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48년 대한민국이 출범함으로써 ‘48년 체제’가 시작됐다.
1961년 8월 12일, 군사정부는 민정 이양을 약속했다. 5.16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3년 여름에 국가권력을 민간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해 쿠데타에 불안을 느낀 민심을 회유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63년 10월 박정희는 대통령선거에서 윤보선을 꺾고 당선됨으로써 제3공화국을 열었다.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63년 체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1987년 8월에는 6월항쟁을 이은 ‘노동자 대투쟁’이 분출했다. 8월 17일과 18일, 울산 현대그룹 4만 노동자들이 가두시위를 벌여 노동자 대투쟁은 정점에 도달했다. 22일 옥포 대우조선의 노동자 이석규가 최루탄에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더없이 격렬했던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주의에서 노동과 평등의 중요성을 알린 사회운동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12월 대통령선거를 통해 민주화 시대를 지탱해온 ‘87년 체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 특정한 역사적 시간에 인위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의 교훈을 광복 70년의 8월을 맞이해 돌아보기 위해서다. 이념·지역·세대에 따라 63년 체제와 87년 체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다. 보수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63년 체제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했다면, 진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게 된 87년 체제의 성취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문제는 이런 성과와 성취의 현재적 풍경이다. 1945년 해방에서 출발해 추격산업화와 추격민주화를 통해 서구적 선진사회에 근접했다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 그 미래로 가는 길은 산업절벽·고용절벽·인구절벽·정치절벽의 사면으로 가로막혀 있다. 지난 10여년간 선진화·경제민주화·복지국가 등 새로운 시대정신이 무성하게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저성장·양극화·저출산에서 볼 수 있듯 문제를 해결할 국가능력 및 정치역량에 대해 국민 다수가 회의하고, 그 결과 집합적 무기력이 시민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이다. 해방 3년 동안 해외 동포 입국자는 120만명에 달했다. 1948년 당시 전체 인구가 2,000만명이었음을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이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돌아온 셈이었다. 그런데 70년이 지난 현재 국민 절반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2015년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사회가 놓인 구조적 환경만을 탓할 순 없다. ‘성장 없는 제로성장’, ‘노동 없는 민주주의’, ‘미래 없는 현재’에 대해선 국가를 이끌어온 이들이 결국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지난 70년은 나라 세우기 시대였다. 산업화·민주화를 향한 나라 세우기의 빛과 그늘이 더욱 뚜렷해진 현재, 그 명암을 객관적으로, 좀 더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생각과 상상력을 구속해온 이념적 관성 및 철 지난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8월 한 달만이라도 새로운 ‘미래의 70년’을 향한 일대 논쟁을 제대로 한판 벌일 순 없는 걸까. 광복 70년의 8월을 맞이하는 한 사회학 연구자의 가망 없는, 그러나 간절한 소망을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