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충북 괴산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을 빼곤 딱히 더 내세울 게 없는 곳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양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 등이 여름휴가 장소로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서 여름철엔 외지인으로 북적북적해졌다. 얼마 전부터는 ‘산막이 옛길’을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산막이 옛길’은 산막이 마을로 가는 총 10리의 옛길을 이르는데, 괴산군에서 자연을 즐기며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복원해 놓은 산책길이다.
산책길로는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 제천의 ‘자드락길’, 강릉의 ‘바우길’ 등이 유명하다. 최근 올레길, 둘레길, 자드락길, 바우길 등으로 산책을 떠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그렇다 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특색 있는 산책길을 개발하여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그런데 산책길의 이름 대부분은 고유어나 그 지역의 방언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 ‘둘레길’의 ‘둘레’는 ‘사물의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를 뜻하는 고유어이고, ‘자드락길’의 ‘자드락’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뜻하는 고유어이다. 반면 ‘올레길’의 ‘올레’는 ‘골목’의 제주도 방언이고, ‘바우길’의 ‘바우’는 ‘바위’의 강원도 방언이다. ‘산막이 옛길’의 ‘산막이’는 ‘산(이) 막다’에서 파생된 말이므로 고유어로 볼 수 있다.
산책길의 이름으로 고유어나 방언이 활용되는 건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상품, 가게, 아파트 등의 이름 짓기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가 더 널리 활용되기 때문이다. 많은 산책길이 특정 지역의 관광 명소로 개발된 데 말미암은 것이리라!
여하튼 고유어가 제한적이나마 대접을 받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이 좀 더 확대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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