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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 김] 셰프가 끓이는 라면, 궁금해요?

입력
2015.07.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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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고 갈래?”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언젠가부터 남녀상열지사를 에둘러 표현하는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헤어지고 싶지 않은 남녀가 어떻게든 서로를 붙잡고 싶을 때, 라면이 매개 역할을 한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뜻일 게다. 그만큼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야식이란 소리다. 게다가 함께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야식이라니 라면만큼 로맨틱한 야식이 또 있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족발과 치킨은 라면에 비하면 한 수 아래다.

라면, 로맨틱, 성공적.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라면, 로맨틱, 성공적.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라면을 먹고 난 다음날 얼굴이 퉁퉁 붓는다거나 칼로리가 너무 높아 몸에 해롭다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 붓기를 완화하려 우유나 미역을 넣으면서까지 라면을 즐기는 걸 보면 맛에 대해선 이견이 없을 듯싶다.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이래 라면만큼 싼 값에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가 없다는 점에서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기엔 충분하다.

20년차 요리사에게도 라면 사랑에 예외는 없다. 결혼 전까지 20년간 자취생활을 했으니 라면은 내게 뗄 수 없는 친구다. 그리고 의외로 요리사들의 식사시간은 그리 길고 화려하지 않다. 한국에 온 이후에도 간편하다는 이유로 정말 많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라면을 끓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저마다 독특한 레시피가 있고, 면이 먼저냐 스프가 먼저냐 혹은 달걀을 풀어서 넣느냐 통으로 넣느냐를 두고 논쟁을 하자면 하룻밤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래서 나만의 라면 레시피를 살짝 소개할까 한다. 물을 살짝 많이 담고 스프를 먼저 넣는다. 그리고 단 맛을 내기 위해 얇게 채 썬 당근을 넣고 3분간 끓인 후 면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파의 흰 부분을 송송 썰어 넣고 달걀 푼 물을 젓지 않고 흘리듯이 넣은 뒤 바로 불을 끈다. 나는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한다. 가끔 파 대신에 부추를 넣거나, 아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김치를 잘게 잘라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거기에 달걀을 풀지 않고 덩어리로 노른자만 넣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별로 특별하지 않게 끓이는 편이다.

라면을 만드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셰프가 끓이는 라면이 항상 이런 비주얼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라면을 만드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셰프가 끓이는 라면이 항상 이런 비주얼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이런저런 특별 레시피는 여러 명이 둘러앉아 먹게 되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라면을 5개 이상 끓일 땐 봉지 뒷면에 있는 조리 방법을 따른다. 라면을 끓는 물에 넣고 그릇에 담는 순서에 따라 면발도 제각각으로 익고, 사람들 식성에 따라 달걀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도 복잡한데 거기다 당근을 썰어 넣고 김치를 잘라 볶고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봉지에 적힌 정석대로 끓이면 열명 중 여덟아홉은 군말 없이 먹고 혹시 누군가 입맛에 안 맞는다 해도 변명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짜파구리’처럼 다른 라면을 섞어 먹기도 하고, 심지어 튀기거나 볶아 먹기도 하는 개성 만점 라면 레시피를 보고 있자면 참 재미있기도 하고 따라 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정석대로 끓여 먹어 보자. 매운 라면은 맵게, 된장라면은 구수하게 봉지에 적힌 라면 이름 그대로의 맛, 그 라면을 개발한 사람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있는 맛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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