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승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후
신격호 숙소 앞서 10여일 과오 사죄
결국 문 열리며 '왕자의 난' 비화

“오토상 유루시테 쿠다사이(お父さん 許してください,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지난 4월 중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 34층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직무실 겸 거처 문 앞에서 장남 신동주(60)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부인이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평소 차분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외유내강형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진 신 전 부회장은 지난해 말 일본 롯데 부회장과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줄줄이 해임됐고 올해 초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마저 물러나면서 깊은 좌절감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신 전 총괄회장의 숙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 부부는 비서진들이 나서서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신 전 부회장 부부의 ‘석고대죄’는 이후 10여일 간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신 전 총괄회장의 숙소 문이 열렸고, 아버지 신격호의 맏아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다.
10여 일 간 지속된 신 전 부회장의 ‘석고대죄’는 롯데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사실은 비서진을 통해 신동빈 회장에게 보고됐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방심했을 수 있다”며 “아버지가 손을 들어준 이상 석고대죄를 별것 아닌 것으로 보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석고대죄’가 결국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으로 이어져 이번 롯데가 분쟁의 중요한 계기가 된 셈이다. 문제는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과연 어디에 있느냐이다. 최근까지 그는 맏아들인 신 전 부회장을 해임하고 차남인 신동빈 한국 롯데 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지난 28일 돌연 일본으로 건너가 신 회장을 롯데홀딩스 이사에서 해임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일각에선 구순을 넘긴 신 총괄회장이 연로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라고 보지만 롯데 내부에서는‘석고대죄’를 먼발치에서 가슴 아프게 지켜본 장자(長子)에 대한 애정 때문으로 해석한다.

한편, 신 전 부회장은 이날 저녁 10시33분께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출발한 항공기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신 전 부회장은 취재진의 질문엔 입을 다물고 경호원들의 보호 속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벤츠S350을 타고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장학만 선임기자 trend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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