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석하며 사실상 혐의 인정
금품수수 자수서도 소환 전 제출
"뇌물 아닌 정치자금" 감형 노린듯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겠다.”
박기춘(59ㆍ경기 남양주 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범죄 혐의를 사실상 시인했다. 29일 오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 배종혁)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하면서다. 검찰에 소환되는 정치인들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말끝을 흐렸던 것에 비춰 박 의원의 시인 발언은 극히 이례적이다. 박 의원은 아파트 분양대행업체 I사 대표 김모(44ㆍ구속기소)씨로부터 2억5,000만원의 현금과 명품시계, 명품가방, 고급 안마의자를 수수한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날 검찰에 나온 박 의원은 취재진에게 “국민 여러분께, 특히 우리 남양주 시민 여러분과 국회 선배 동료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본인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겠다. 있는 그대로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그의 시인 발언을 두고 “솔직히 죄를 뉘우치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박 의원 측의 또 다른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박 의원은 수사 초기 김씨와는 단순한 친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금품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뒤로는 받은 금품을 측근을 시켜 몰래 반환하려 했다. 하지만 전 경기도의원 정모(51ㆍ구속기소)씨가 검찰에서 박 의원의 부탁을 받고 김씨에게 금품을 되돌려 줬다고 자백하면서 이런 사실이 탄로났다. 박 의원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마지못해 혐의를 인정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박 의원이 소환 전 검찰에 자수서를 제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다. 박 의원은 자수서에서 “받은 금품은 정치자금이지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 금품(뇌물)이 아니며, 액수도 다르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정치자금법 위반이 인정되면 최대 징역 5년을 받게 되나, 자수한 사정 등을 참작할 때 집행유예 선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가 적용되면 수수액이 1억원 미만이라도 징역 7년 이상이 가능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 박 의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을 지내며 건설 관련 입법 활동을 해 왔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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