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법·한국 복권·양말 색 지정
플라스틱 금지·쇼핑물품 배달…
시시콜콜한 요구 20장 달하기도
‘일요일엔 멕시칸 음식.’ 지난 26일 안산밸리M록페스티벌(이하 밸리록페)에 출연한 그룹 푸파이터스가 공연 전 주최사에 요구한 식단이다. 이 요청을 받은 페스티벌 주최 측은 타코와 브리또를 공수해 푸파이터스에게 제공했다. ‘고기는 썰지 말고 덩어리로, 가슴살은 삶지 않고 구워달라’고 요구한 음식의 조리법도 그대로 맞춰줬다. 월요일엔 닭요리 등 요일마다 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푸파이터스가 공연 주최 측에 보낸 라이더(공연 관련 요구사항이 담긴 문서) 50장 중에 20장은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과 관련된 요구사항이이었다. 나아가 자신들이 원하는 조리법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퀴즈도 냈다. 까다롭게 군 게 미안해서였는지 푸파이터스는 ‘요리를 레시피 대로 잘 해내면 투어 매니저가 티셔츠를 선물할 것’이란 문구를 라이더 안에 적어 달래기도 했다.
해외 참가자들이 많은 페스티벌의 계절, 유별난 해외 스타 음악인들의 ‘입맛’을 맞추는 일은 공연기획사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플라스틱 및 백열전구 사용 금지와 “친환경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는 공연을 안 한다”고 한 영국그룹 라디오헤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이들의 첫 내한무대(2012년)도 물거품이 됐을 일이다.
이와 비교하면 내달 7~9일 인천 송도에서 열릴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 설 스콜피온스가 “검은 점 없는 바나나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 건 애교 수준이다. CJ E&M 측에 따르면 요즘 해외 아티스트들이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는 마누카 꿀이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소스인 후머스도 자주 찾는다. 엉뚱하고 황당한 요구도 많다. 밸리록페를 찾은 데드마우스는 ‘사이즈 9’인 흰색 양말을 특정해 주문했고, 루디멘탈은 한국 복권과 검은색 양말을 주문했다. 그룹 트웬티웬파일럿츠는 ‘수세미’를 찾았다. 손과 목을 까맣게 칠하고 무대에 서는데, 분장을 항상 수세미로 닦는다고 해 주최 측은 수세미에‘매우 중요’(Very Important)란 문구를 적어 서비스했다.
공연계 관계자에 따르면 푸파이터스의 출연료는 10만~20만달러(1억~2억원) 선이다. 호텔 숙박과 이동 수단 제공 및 별도의 대기실(콘테이너) 마련은 기본이다. 음악인들이 쇼핑을 하고 택배를 부탁하면 이를 처리하는 것도 페스티벌 주최사의 몫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내 밴드들은 부러울 뿐이다. 인디 밴드의 페스티벌 출연료는 300만원 대. 숙박시설과 차량은 지원받지 못한다. 페스티벌에 출연하려면 페스티벌 전후 한 달 사이에는 단독 공연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쓴다. 물론 특정 음식 등을 요구하는 라이더는 꿈도 못 꾼다. 자유와 공존을 노래하는 록음악페스티벌 속 극과 극 뒷모습이다. 최근 밸리록페에서 만난 홍대인디밴드 기획사 대표는 “1년에 한 번 대기업이 불러준다는 데 의의를 둘 따름”이라고 말을 아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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