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수 확대로 재차 불거진 정치불신
정치 무관심 탓하나 국회가 쌓은 업보
근본 신뢰회복 없이는 국민 설득 불가
공직자 선거에서 투표해본 것이 대통령 선거 때 두 번뿐이다. 첫 투표는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1987년 겨울로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온 국민의 관심이 선거에 쏠려있었다. 군 내에서는 군 출신인 노태우 후보가 될 것인지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군인 신분으로 투표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중대 별로 줄지어 투표소로 갔다. 사표(死票)를 던지는 것만큼은 자유였다. 두 번째로 투표한 것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인 2012년 대통령 선거였다. 그마저도 아내에게 등을 떠밀려 투표소로 갔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 때는 투표소에 아예 가본 적이 없다. 대표적인 정치적 무관심층이라고 비난해도 굳이 논쟁하고 싶지 않다. 직업 특성상 선거일이 더 바쁘기 때문이라는 변명도 해봤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투표장을 찾아 헤맨 뒤 출근하는 것도 귀찮았을 터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집단을 경험적으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잘못 뽑으면 더 화가 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아직도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 이름을 모른다.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인사를 나눈 적도 없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겠다. 휴대전화로만 검색해도 금세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이 누구든 내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 같지 않다. 하물며 지역 구청장이나 시의회 의원이야 있거나 말거나 알 바 없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다만, 아파트 입주민 대표는 잘 안다.
나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투표 참가여부를 기준으로 본다면 정치적 무관심층이 적지 않다. 최근 들어 총선 투표율이 50% 안팎에 머무는 것으로 미뤄 적어도 국민의 절반 이상은 무관심층에 가깝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적 무관심으로 국회의원을 올바르게 뽑지 못해 나라가 잘못돼 간다고 비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유권자 입장에서 오히려 합리적인 측면도 있다. 이는 학설로도 상당 부분 설명되어있다.
이른바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가설이다. 이 가설은 후보자에 대한 각종 정보를 얻기 위해 투자하고 노력하는 비용이 이 정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클 경우 차라리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정보는 후보자들이 내가 사는 동네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럴 능력은 있는지, 교육이나 복지, 교통 등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후보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이다. 어지간히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이렇게 습득한 정보를 통해 투표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후보자를 당선시킬 확률도 높지 않다. 하기야 누가 당선되더라도 도긴개긴일 것이다. 따라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의원 수를 현재 300명에서 369명이나 390명까지 늘리겠다고 한 이후 정치권이 시끄럽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타당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지역주의와 양당체제의 폐해를 막기 위한 방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차갑다. 국회의원 숫자 확대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30%에도 못 미치는 걸로 나온다. 얼핏 봐도 밥그릇 챙기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회는 늘어난 의원 숫자만큼이나 더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꼴 보기 싫은데 숫자까지 늘리겠다니 더욱 눈에 거슬린다.
싸움질이나 발목잡기에 이력이 난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해있다. 정부의 실정(失政)에는 국회도 공동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천적인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국민은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위험하고 무책임하지만, 그래서 나는 가끔 국회 없는 세상을 그린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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