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빠~앙" 경적 요란한 교차로… 3초도 못 참는 '난폭 핸들'

입력
2015.07.29 16:39
0 0

주황불 켜졌는데도 들이밀고

신호 바뀌기 전 급출발 예사

횡단보도에선 정지신호 무시도

지난해 신호위반 교통사고 2만건

급가속 따른 연료 소모도 어마어마

대다수의 엘리베이터는 평균 5~6초면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이를 참지 못하고 '닫힘 버튼'을 눌렀을 때 뒤따르던 노약자나 어린이가 문에 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대다수의 엘리베이터는 평균 5~6초면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이를 참지 못하고 '닫힘 버튼'을 눌렀을 때 뒤따르던 노약자나 어린이가 문에 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8일 서울 강남구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앞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자 차량들이 한데 뒤엉켰다. ‘주황불’이 켜졌는데도 무리하게 직진을 하려던 차량들과 다른 방면에서 오던 좌회전 차량들이 서로 경적을 울려댔다. 이 곳 교차로는 네 방면의 차량들이 ‘주황불 진입’을 당연시 여기는 탓에 신호가 바뀔 때마다 ‘꼬리물기’로 따라온 20여대의 차량이 교차로 중앙에 정차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편도 5차선 대로라 큰 교통체증 없이 달려오던 차량들이 주황색으로 바뀐 신호등을 보고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갑자기 속도를 높여 아슬아슬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이 교차로를 지나 코엑스 방면으로 향하던 박모(47)씨는 “다른 차량들도 주황색 신호에 교차로를 통과해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 건넜다”며 “주황색 신호를 보고 차량을 중지할 경우 후미에 따라오던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릴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교차로를 통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운전자들의 ‘빨리빨리’ 운전습관은 대로가 아닌 좁은 차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날 서울 자양동 영동대교 북단 교차로에서 신양초등학교 방향 편도 2차선 도로 역시 조급증에 신호를 무시한 차량들이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 동안 차로를 관찰한 결과 정지 신호임에도 횡단보도를 넘나든 차량은 49대에 달했다. 이들은 보행 신호가 남아 있었음에도 보행자가 건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를 내달렸다. 보행 신호에 건너는 사람이 없는 경우 아예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를 가로 질렀다. 이날 자전거를 탄 채 횡단보도 보행 신호를 기다리던 최모(52)씨는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그냥 지나가는 차량 때문에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빨리빨리 운전습관은 한국 사회 운전자들에게 일반화돼 있다. 신호위반을 해도 법을 어긴다는 자의식이 거의 없을 정도다. 운전경력 5년차인 서 모 씨는 “평소 편도 1,2차선의 좁은 도로에서는 주변에 차량과 사람이 없으면 빨간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할 때도 있다”며 “‘비보호 좌회전’ 교차로에서도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의 간격을 보고 통과할 수 있겠다 싶으면 빨간 신호에도 속도를 높여 교차로를 지난다”고 말했다. 9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는 유근일(30)씨 역시 “자정이 넘어 신호등이 점멸등으로 바뀌면 도로 위를 쌩쌩 달린다”며 “좌회전이나 유턴 신호가 안 들어와도 반대편 신호가 바뀔 때쯤 미리 움직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유씨가 도로주행 법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새벽에는 적색 점멸등에서는 완전 정지, 주황색 점멸등에서는 서행”이라고 읊을 정도로 교통법규를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럼에도 교통법규를 어기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차량이 없을 때 빨리 지나가고 싶은 조급한 마음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신호등 앞에서 속으로 ‘하나, 둘, 셋’까지 세는 여유만 가질 수 있다면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도로 위에서 단 3초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한 주행습관이 얼마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호위반으로 일어난 교통사고는 총 2만4,702건으로 이 중 사망자가 356명이고, 부상자는 무려 4만2,597명이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사망자 1명당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4억4,097만원에 달한다. 또 중상자는 1인당 4,930만원, 경상자는 1인당 287만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이를 기준으로 지난해 신호위반 교통사고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산출한 결과 무려 8,437억8,500여만원이라는 액수가 나왔다.

신호위반 운전자들이 교차로 등을 급하게 통과하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 것도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에 속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소나타 1대가 200m를 급가속하면 시간당 26원의 연료비가 추가된다. 개개인에게는 큰 액수가 아니지만 차량 10만대가 모이면 연간 9억5,000만원이 낭비되는 셈이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호위반이 초래하는 교통체증 등 산출되지 않은 사회적 비용도 상당하다”며 “3초만 느긋하게 주행해도 연간 1조원에 가까운 사회적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