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밤중에 깨어있거나 혹은 해가 지는 건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있으면 속에서 누가 울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하루 종일 의젓하고 단호하게 행동한 날이면 더 그렇습니다. 후배에게, 거래처 직원에게, 혹은 부모님께 다 잘 될 거라고,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말한 날 저녁엔 정말 그렇습니다. 마음속에서 겁 많은 아이가 흐느끼고 있지요. 구름과 여름의 숲을 사랑하고 종이컵 속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애는 제가 싫겠죠. 작은 일에도 볼이 빨개지고 수업시간에 말을 더듬던 그 애를 저도 늘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허세도 거짓도 없고 기만도 없었던 어린 시절이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일은 즐겁지 않은데, 사랑도 노래도 멈춘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리 분주한 거죠? 서류를 들고 총총거리던 관공서 복도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가던 도로에서 나는 내 영혼을 흘렸나요? 질문이 갑작스런 여름비처럼 쏟아집니다.
아, 아직 그 애는 내 곁에 있나 봐요. 모든 게 이상해서 질문이 많았던 아이. 묻고 또 묻고 싶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손도 못 들던 아이. 여전히 질문이 많은 아이가 아직 내 속에 있습니다.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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