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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다 코웃음 치다 묵직한 파도에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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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다 코웃음 치다 묵직한 파도에 풍덩~

입력
2015.07.2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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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가장 핫한 해양스포츠라는 서핑을 배우러 가는 길. 백두대간을 넘기 전만 해도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출발 전 일기예보에선 강원 양양에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우중(雨中) 서핑이라. 수년 전 폭풍 서핑의 메카인 캐나다 밴쿠버아일랜드의 토피노에서 봤던 풍경이 머리를 스쳤다. 폭풍우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토피노의 서퍼들은 하나 둘 서프보드를 들고 바다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이제껏 그 폭풍이 오기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그들의 정진(精進)에선 오로지 보드 하나와 맨몸으로 성난 바다와 맞서 싸우겠다는 전사의 아우라가 번졌다.

강원 양양에 서핑 전용 비치가 생겨나 서핑을 열망하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라온서피리조트제공
강원 양양에 서핑 전용 비치가 생겨나 서핑을 열망하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라온서피리조트제공

그만한 배포가 없는 새가슴엔 혹시나 큰 파도에 휩쓸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대관령을 넘자 하늘이 파랗게 바뀌었다. 비는커녕 구름도 많지 않았다. 눈에 들어온 바다는 온순했고, 파도도 거의 일지 않았다.

서퍼들이 ‘호수’ 혹은 ‘거울’이라 칭하며 가장 곤혹스러워 한다는 고요한 바다다. 걱정은 이제 반대편으로 촉수를 뻗었다. 파도가 없는 바다에서 어떻게 서핑을 배우지? 서울의 동료에게 상황을 전했더니 입김을 세게 불란다. 없는 파도를 만들어서라도 타고 오라고.

최근 서핑 마니아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현재 서핑동호회 회원들은 2만명을 넘어섰고,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서핑 강습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도 즐겨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서핑의 확산은 더 크게 힘을 받고 있다. 스키장의 시즌방처럼 해변에서의 서퍼들의 동숙도 이제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서핑은 널빤지를 타고 파도를 지쳤던 타히티 등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의 유희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 유희가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전해져 전통놀이로 이어지다 근대에 들어 해양스포츠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파도에 몸을 의지할 보드만 있으면 가능한 서핑은 큰 파도를 만들어내는 대양을 접한 모든 나라들의 젊은이들을 흥분시켰고 나름의 독특한 서핑 문화를 만들어냈다.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 ●라온서피리조트제공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 ●라온서피리조트제공

양양의 서핑 전용비치에서 시작된 강습. 검정색 전신 서핑용 슈트로 갈아입고 백사장으로 향했다. 착 달라붙는 슈트는 당혹스럽게도 몸의 굴곡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불룩 불거진 배의 라인 때문에 ‘슈트발’은 서퍼가 아닌 해녀에 더 가까웠다.

백사장에서 서프보드를 놓고 기본 자세를 배웠다. 보드와 발목을 연결하는 생명줄 같은 리쉬코드 묶기를 시작해, 보드에 중심 잡고 눕기, 손으로 노 젓는 패들링, 파도에 올라타는 때에 맞춰 몸을 세우는 푸쉬업 동작 등을 뙤약볕 아래 반복 학습했다.

마침내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막상 물에 들어서니 ‘거울이다’ ‘호수다’ 라며 얕잡아 봤던 높이 20~30㎝의 물결이 꽤나 묵직한 파도로 다가왔다.

서프보드 위에서 동작은 크게 4가지로 이뤄진다. 엎드려서 파도를 타기 직전까지 속도를 내는 패들링, 파도에 올라탈 즈음 팔을 쭉 펴서 몸을 일으키는 푸쉬업, 무릎을 세우고 몸을 일으키는 테이크오프, 균형을 잡고 파도를 타는 라이딩 등이다. 동작은 이렇게 구분 지을 수 있지만 파도에 올라타는 건 찰나와 같은 시간이기에 거의 한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만 한다.

백사장 연습에 이어 물 속에서의 실전이 수 차례 이어졌지만 몸을 가누기가 쉽지 않다. 중년의 나이 탓인지, 지탱하기 무거운 몸집 때문인지 자책이 앞섰다. 나를 전담한 미모의 최모(26) 강사는 괜찮다고 웃는 표정으로 다독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까 배운 매뉴얼을 다시 되새겨 보아도 정작 패들링 후 ‘업’ 하란 지시가 들려오면 금세 그 모든 매뉴얼들은 머릿속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이젠 포기해야겠다 싶을 때였다. 될 대로 되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어느 순간 내 몸뚱이가 보드 위에 서있는 것 아닌가. 물 위에서 기립해 파도를 타고 있었다. 돌쟁이 아이의 첫 걸음마만큼이나 감격적이었다. 오래, 또 멀리 라이딩을 하지 못했지만 그 기립의 짜릿한 감동은 길게 이어졌다.

한 번 일어섰으니 다음은 수월할 줄 알았는데, 자만의 무게가 더해지며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여전히 물 속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계속 웃는 낯으로 “괜찮다” “잘했다”며 사기를 돋워주려는 강사 얼굴을 마주하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초보자들에겐 잔잔한 파도에도 균형잡는 것이 쉽지 않다.
초보자들에겐 잔잔한 파도에도 균형잡는 것이 쉽지 않다.

물 속으로의 추락에 지쳐갈 무렵, 드디어 강습이 끝났다. 몇 번의 기립뿐이었지만 그 정도라도 뿌듯해하며 보드를 들고 물 밖으로 나설 때였다. 강사의 한마디. “아버님, 수고하셨습니다.” 순간 보드를 놓치고 말았다.

처음 배울 때는 파도에 맞춰 몸을 세우는 과정이 서핑의 모든 것 같지만, 실제 파도를 타기 시작한 뒤부터 서핑은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고 한다. 파도를 기다리고, 파도를 선택하고, 그리고 파도를 타는 것. 서핑의 매력은 묵묵히 나만의 파도를 기다려 맞는 것에 있다. 그 누구도 죽을 때까지 같은 파도를 만날 수 없다며 서핑을 마치 변덕스러운 연인과의 사랑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다릴 수밖에 없기에 더욱 빠져드는 게 바로 서핑이라고.

양양=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국내 최초 서핑전용해변 서피비치 양양에 개장

서핑 마니아들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작 물놀이 시즌인 한여름 서퍼들은 바다를 빼앗긴다. 해수욕장이 개장하며 안전선이 둘러치게 되면 서퍼들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다. 서핑이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더운 여름 더 자주 바다를 즐기고 싶은 건 서퍼들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물속에 들어가기 보드 위해 일어서는 기본 자세를 배운다. ●라온서피리조트 제공
물속에 들어가기 보드 위해 일어서는 기본 자세를 배운다. ●라온서피리조트 제공

지난 11일 강원 양양군 하조대 해수욕장 인근에 국내 최초의 서핑 전용 공간인 ‘서피비치(SURFYY BEACH)’가 문을 열었다. 해변의 구석에서 해수욕객의 눈치를 보며 이뤄지던 서핑이 이제 당당히 비치의 주인이 돼 전용 해변을 갖게 된 것이다. 이곳에선 보드를 든 서퍼는 환영하지만 튜브를 들고 오는 해수욕객은 입장사절이다. 원래 군사보호구역에 묶여있던 해변인데 양양군 등의 지원을 통해 서퍼들의 공간으로 문을 열게 됐다. 양양은 나름 동해안 최고의 서핑 명소라 자부하는 곳. 2008년 기사문해수욕장에 서핑숍이 문을 열면서 서퍼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인근의 죽도해수욕장 남애해수욕장 등으로 서핑이 확산돼왔다.

이번에 생긴 서피비치는 서핑 입문에 최적의 장소다. 국내외 서핑 전문 강사진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서프 스쿨이 운영된다. 보드와 슈트 등 서핑 장비도 다량 갖추고 있다.

백사장 뒤로는 각종 식음시설을 갖춘 캠핑 존과 공연무대가 조성돼 있다. 서핑과 함께 밤엔 서퍼들만의 흥겨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8월 말까지 매일 밤 홍대 인디밴드의 버스킹 공연과 디제잉 파티가 열린다. 주말에는 버벌진트, 스컬&하하, MC스나이퍼 등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서핑강습 및 대여, 캠핑 등을 묶은 1박2일 패키지가 4인 기준 30만원 선이다. www.surfyy.com (033-672-0695)

[여행메모]

●서피비치는 하조대해수욕장 바로 위에 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을 땐 강원 양양군 현북면 중광정리 508. ●양양에서 놓칠 수 없는 먹거리로는 막국수와 섭국 등을 꼽을 수 있다. 서퍼들이 추천한 막국수 맛집은 후천 뚝방에 있는 범부메밀국수(033-671-0743). 특이하게 해바라기씨와 호박씨가 고명으로 올라간다. ●양양에선 자연산 홍합을 섭이라 부른다. 남해안 등에서 건져 올린 홍합에 비해 더 쫄깃하다. 이 섭과 함께 부추 미나리 양파 된장 등을 풀어 넣고 끓여낸 섭국은 훌륭한 보양식이다. 해장에도 그만이다. 동호해수욕장 인근의 오산횟집(033-672-4168)이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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