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쿠바 경제 봉쇄 실패 인정
한계에 다다른 카스트로 정권, 하루 10만배럴 석유 보조해주던
베네수엘라 셰일오일 직격탄 맞아 대안으로 美와 경제 교류 절실해져
지난 20일 미국과 쿠바가 54년하고도 6개월 17일만에 국교를 정상화하고 상대국 수도에 대사관 문을 다시 열었다. 이날 아침 미국 워싱턴시에서는 수백명의 외교관, 의원, 활동가들 등을 초청한 쿠바 대사관이 축제 분위기로 문을 열었다. 반세기가 넘는 기간 가족들과 혹은 홀로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 이민자들은 감회에 젖었다. 초대받은 쿠바 이민자 가운데 사업가인 랄프 파티노는 보관하던 쿠바 깃발을 기부하며 “아버지가 혁명 전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쿠바에서 은퇴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1961년 일곱살때 부모를 떠나 홀로 미국으로 건너온 지리학자 후안 호세 발데스는 “나는 대사관에서 법률상으로나마 쿠바 땅을 밟을 수 있다”며 새 대사관의 현판 사진을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이날 쿠바 외무장관인 브루노 로드리게스는 “지금까지 한번도 미국과 쿠바 사이에 관계가 정상적이었던 적은 없기 때문에 양국이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은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라며 아직 두 나라 앞에 놓인 멀고도 험한 길을 예고했다.
한편 같은 날 쿠바 수도 하바나에서 이뤄진 미국 대사관의 재개방은 훨씬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이날 오전 15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환영의 뜻으로 미국 국기를 흔들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차분히 대사관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다음달 14일 대사관의 미국 국기 게양식과 축하연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이후 미국은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 상원은 쿠바의 여행제한 조치를 해제하고 무역장벽을 낮추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지난 5월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한 것에 이어 지난 27일에는 인신매매 및 강제노동 방지 관련 연례 평가 보고서에서 쿠바를 블랙리스트에서 해제했다.
카스트로 형제와 미국 쿠바 망명자 노령화
어떻게 미국과 쿠바는 50년이 넘는 국교단절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이후 미국이 경제 봉쇄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쿠바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냉전 시대의 산물을 극복하자며 태도를 바꾼 것이다. 또 쿠바 카스트로 정권 지도자들과 미국으로 망명한 1세대 쿠바 이민자들의 노령화로 인해 쿠바와 미국 모두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됐다는 것과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셰일 오일 추출 기술 혁신이 쿠바에 생명줄을 제공해 온 석유 수출국 베네수엘라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쿠바는 베네수엘라를 대체할 경제적 대안이 필요하게 됐고, 그만큼 미국과의 경제교류가 절실해졌다.
미국의 1960년 쿠바에 단행한 경제 금수 조치, 미국기업이 아닌 기업이 쿠바와 거래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헬름스버튼법(1996년) 등 각종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쿠바 정권 붕괴라는 미국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쿠바 문제는 계속해서 미국 국내 정치 요인으로 남아있었다. 1980년 한 해에만 12만만5,000명의 쿠바인이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했던 ‘1980년 쿠바 엑소더스’의 당사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플로리다주에서는 150만명 쿠바인들이 주요 정치세력이 됐고, 이후 플로리다주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가름하는 스윙 스테이트 중 하나가 됐다. 이들 쿠바계 미국인들은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 완화에 완강히 반대해, 미 정부의 대쿠바 강경정책 유지의 주요 요인이 됐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 대부분이 고령에 접어들었다. 쿠바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는 각각 88세와 83세로 정권 변화를 고려해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고 미국의 쿠바 망명자들의 평균 연령도 40세로, 히스패닉계 전체 평균 27세에 비해 상당한 높다. 이런 세월의 변화로 인해 미국과 쿠바 사이에 협상이 이뤄질 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됐다. 1980년대 이후 정치적 박해보다는 경제적 기회를 찾아 미국에 온 2, 3세대 쿠바계 미국인들은 이전 세대보다 미국-쿠바 관계 변화에 긍정적이다.
기술의 발전, 베네수엘라의 경제붕괴
게다가 과거 소련과 그 이후 베네수엘라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며 대내외적인 개혁요구에 버텨온 카스트로 정권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2013년 쿠바의 우방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망은 베네수엘라의 경제 붕괴와 제도적 혼란을 몰고 왔고, 쿠바 정권으로 하여금 또 다른 후원자를 모색하는 동기로 작용했다. 쿠바는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정권이 연간 500만~600만 달러에 달하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극단적인 경제 긴축으로 버티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으로 후원자를 교체한 역사가 있다. 이후 10년 가까이 쿠바는 베네수엘라로부터 하루에 10만배럴에 달하는 석유 보조를 받았다. 배럴당 평균 100달러라고 가정할 때 쿠바는 360억달러 이상에 달하는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석유시장이 요동치며 유가는 배럴당 60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수압파쇄기법’으로 불리는 셰일오일 시추 방식의 혁신이 이뤄지면서 극적으로 석유공급이 증가하고 전세계적 경제침체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석유수출에 경제를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됐다. 그 결과 쿠바는 새로운 대안으로 천적이었던 미국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됐다. 대내외적 변화를 인식한 쿠바도 라울 카스트로의 집권 이후 실용노선에 근거한 실질적 개방과 자유화 노력을 확대해왔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바로 쿠바의 정치적 개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과의 관계 복원으로 언론과 여행, 금융, 투자의 자유가 허용한 상황에서는 엄격하게 통제된 정치 시스템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내 반대파 “파우스트의 흥정이다”
모두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카스트로 정권의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온 쿠바 망명자들의 지지를 받는 세력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쿠바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안토니오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달 초 뉴욕타임스에 ‘오바마와 쿠바의 파우스트식 흥정’이라는 글을 게재하며 “우리가 불쾌한 외국 지도자들과 외교정책상 관계를 개선하려 할때, 미국의 국가적 가치와 전략적 이해와 상충되는 파우스트의 흥정을 하게 된다”며 “쿠바의 인권침해 현실은 오바마 대통령의 관계개선에도 불구하고 전혀 바뀐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루비오 의원은 최근 쿠바 인권운동가인 안토니오 로들레스가 카스트로 정권 추종자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거의 100여명의 가까운 사람들이 체포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는 최근 몇 달간 “쿠바에서 인권활동가, 독립 언론인, 기타 비판자들에 대한 마구잡이 체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를 인용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경제ㆍ외교관계 구축이 쿠바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지고 올 것이라 주장했으나, 그 동안의 사례로 비춰봤을 때 경제적 개방과 국교수립이 자동적으로 정치적 자유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중국이 경제개방을 했음에도 인권운동가들이 수감된 현실을 지적했다.
루비오 의원은 이어 “쿠바의 개혁 의지가 부족했는데도 불구하고 미 정부가 일방적으로 양보를 했다”며 “더 관계가 심화되기 전에 우리가 어떤 개혁을 기대하는지를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FBI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인사들의 미국 송환과 모든 정치사범의 석방, 쿠바의 정치적 개혁의 시작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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