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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만족' 탈 쓴 블랙컨슈머… 기업 경쟁력까지 갉아먹는다

입력
2015.07.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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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안 해주면 "문 닫고 싶나?"

"보상 못 받아 화병" 수차례 돈 요구

SNS 파급력 악용해 생떼ㆍ협박

대기업 보다 쉬운 영세업체 표적

악성소문 하나에 존립마저 위협

기업들이 판매 현장에서 겪는 최대 고민이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다. 블랙 컨슈머란 보상금을 목적으로 의도적인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기업들이 블랙 컨슈머 해결을 위해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선량한 소비자들까지 간접 피해를 보는 셈이다. 그만큼 기업들은 블랙 컨슈머를 사실상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해서 보고 있다.

“내가 파워블로거야! 가게 망하고 싶어?”

과거 블랙 컨슈머들이 제품의 기능이나 품질을 문제 삼았다면 요즘 블랙 컨슈머들의 특징은 기업의 평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블로그나 사회관계형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언론사에 제보하겠다는 말이 가장 센 협박이었는데 지금은 SNS에 퍼트리겠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초까지 한 복합쇼핑몰 여성 의류매장에서 근무했던 이 모(27)씨는 인터넷 공포증에 걸렸다. 화장품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블라우스를 환불해주지 않으면 자신이 운영하는 패션 관련 블로그에 쇼핑몰 이름과 매장 사진을 올리겠다며 생떼를 쓴 블랙 컨슈머 때문이다.

출장 중인 사장이 돌아오면 보상해 주겠다고 했지만 해당 블랙컨슈머는 “내 블로그에 올리면 매장 문 닫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2주일 간 끈질긴 협박을 했다. 이씨는 그동안 비방글이 올라왔을까봐 밤낮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는 “새벽에라도 글이 올라올까 싶어 밤을 새운 적도 있다”고 털어 놓았다.

사업자들은 온라인 공개 협박을 한 귀로 흘리기 힘들다. 인터넷에 게재되는 순간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빠르게 퍼지고 부풀려 지기 때문이다. 온라인 카페ㆍ블로그ㆍ페이스 북처럼 동일한 관심사나 집단으로 엮인 경우 전파 속도는 더 빠르다.

특히 병원이나 음식점 등 명성이 중요한 곳은 더욱 민감하다. 인천의 한 성형외과에서는 쌍꺼풀 수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환자가 재수술을 요구하며 피해보상으로 무료 보톡스 시술을 원한 경우가 있다. 해당 병원장은 “온라인 성형카페에 올린다는 말 한마디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며 “인터넷 검색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다”고 고백했다.

‘더 쉬운 상대’인 영세기업으로 눈 돌리는 블랙컨슈머

중소기업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블랙 컨슈머들은 피해 보상 절차가 까다로운 대기업보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영세업체를 표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영세기업들은 악성 소문 하나에 회사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어서 블랙컨슈머의 주장이 의심스러워도 마지 못해 억지 요구를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부산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구입한 포장 김치에 일부러 벌레를 넣고 제조사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블랙 컨슈머도 소비자 민원이 발생하면 해당 할인점에서 퇴출될지 모른다는 이 업체의 우려를 악용했다. 블랙컨슈머는 같은 방식으로 지난해 2월부터 5개월 동안 300여 곳 이상의 영세 제조사만 골라 3,500만원을 챙겼다가 경찰에 잡혔다.

수법도 치밀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벌레를 미리 수집해 집 안에 보관했고 단맛이 나는 식품에 개미를 넣기도 했다.

영세 기업들은 부담스러운 소송 비용 때문에 법적 대응도 쉽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블랙컨슈머 대응실태’를 보면 응답기업의 83.7%가 블랙컨슈머의 악성 민원을 그대로 수용했다. ‘법적 대응을 통해 적극 대처한다’는 답변은 14.3%에 불과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극히 일부 블랙 컨슈머일지라도 중소기업들이 입는 피해는 크다"고 말했다.

“화병 났으니 100만원 더 내놔” 기업 경쟁력 좀먹는 블랙컨슈머

악성 민원은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기업들은 입막음을 위해 수십만~수천 만원의 금전적 보상을 해주거나 몇년에 걸친 법적 소송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 낭비를 하고 있다. 기술 투자나 신제품 개발에 쏟아야 할 역량을 불필요한 곳에 소모하는 것이다.

3~4개월에 한 번씩 블랙 컨슈머에게 시달린 한 중견 식음료 업체도 지난해 초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30대 여성이 음료를 먹고 심한 복통을 겪다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며 다짜고짜 500만원을 요구했다.

해당 음료나 입원 기록 등 구체적 증거는 전혀 내놓지 못한 채 이 여성은 매일 5,6회씩 고객상담실로 전화를 걸어 “보상을 받지 못해 화병까지 났다”며 100만원을 추가 요구했다. 증거도 없이 무조건 보상할 수 없다고 수 차례 알렸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이 업체는 해당 금액의 상품권을 지급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보상금 600만원보다 한 달 가까이 시달린 시간이 더 끔찍했다”며 “악성 민원이 접수될 때마다 고객상담실은 물론 전 부서에 비상이 걸려 손실이 막대하다”고 진저리쳤다.

결국 이 같은 블랙 컨슈머의 악행은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박종태 한국CS경영아카데미 대표는 “블랙컨슈머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기업으로서 유ㆍ무형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거나 기존의 서비스를 줄이는 등 선량한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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