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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계란 한 개 익히는 일

입력
2015.07.2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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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농고를 나와 양계장에서 일하다 지역 예비사단 방위병으로 근무했던 친구의 1980년대 얘기다. 그가 계란 한 개를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8시간이었다. 어려서 보약을 너무 세게 써서 그랬다던가, 지능이 약간 떨어졌던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부대에서도 별다른 보직을 맡기지 않고 출퇴근 점호만 할 정도였다. 무료했던 그는 언제부턴가 도시락 가방에 매일 성냥과 소금, 날계란 한 개를 싸서 출근한 뒤 출근 점호만 마치면 곧바로 병영 근처 하천변으로 나갔다.

▦ 하천변에서의 일과는 이랬다. 우선 모래밭을 파서 화덕을 만든 뒤, 그 위에 넓적한 돌을 찾아 불판으로 얹는다. 불판 위에는 다시 고운 모래를 두툼하게 한 켜 덮어 올린다. 그 후 점심 전까지 바삐 움직여 관목 숲에서 마른 삭정이 같을 걸 모아 땔감을 한 짐 해둔다. 오후엔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된다. 날계란을 불판 위 모래에 반쯤 묻힐 정도로 올려놓고 불이 과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끈질기게 삭정이 불을 땐다. 이윽고 해가 기울 때쯤이면 계란이 잘 익게 된다. 그걸 소금에 찍어 먹으면 하루 일과가 끝났다.

▦ 언젠가 고향 친구들의 우스개를 들으면서 ‘파킨슨 법칙’을 떠올렸다. 영국 행정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1955년 소개한 이 법칙의 기본 가설은 ‘일은 그걸 마치도록 주어진 시간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파킨슨은 그 예로 엽서 한 장을 쓰는 데 8시간이 주어지면 업무자는 8시간 동안 할 일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시간 대신 자원과 인력을 대입해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파킨슨은 이런 현상을 조직론으로 발전시켜 ‘공무원 수는 업무의 많고 적음과 관계 없이 계속 늘어난다’고 했다.

▦ 실제로 파킨슨에 따르면 1차 대전 후 영국 군함은 62척에서 20척으로 줄었으나, 해군본부 공무원 수는 2,000명에서 3,569명으로 80%나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화 이래 역대 정권마다 감축을 선언했지만, 어제 나온 ‘2015 행정자치 통계연보’에 따르면 공무원 수는 이미 지난해에 100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비대화했다. 최근엔 국회의원 수도 부족하니 크게 늘리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인원이 돼야 국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반감이 큰 건 공연한 조직 부풀리기가 아닌가 하는 불신 때문일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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