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 경찰 첫 공조로… 41명 검거
지난달 19일 오후 2시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시의 한 아파트에 경비원을 가장한 중국 공안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아파트 전기를 차단한 뒤 “전기 점검을 하러 왔다”고 속여 손쉽게 내부로 들어갔다. 평범한 가정집으로 위장했지만 이 곳에는 바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를 진두지휘하는 콜센터가 차려져 있었다. 이날 작전으로 칭다오 조직의 한국인 총책 등 5명이 검거돼 3명이 국내로 인도됐다. 한국 경찰이 중국 공안과 협조해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을 현장에서 붙잡은 첫 순간이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칭다오와 광저우(廣州)의 보이스피싱 2개 조직을 적발, 41명을 검거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중 광저우 조직 총책 이모(31)씨 등 17명이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됐고 22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이들 일당이 한국인 423명에게서 뜯어낸 돈은 21억4,000만원에 달했다. 중국동포인 칭다오 조직 총책 이모(32)씨 등 2명은 중국 사법당국에서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광저우 조직 총책 이씨는 2012년 10월 서울 강남에서 운영하던 유흥업소의 경영상태가 악화하자 광저우에 콜센터를 차린 후 지난해 12월까지 177명으로부터 10억원을 가로챘다. 무작위로 한국에 전화를 걸어 “대출 이자를 낮춰줄 테니 먼저 상환을 하라”고 속이는 식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광저우 조직의 수익금 배분에 불만을 품은 한국인 이모(38)씨가 떨어져 나와 칭다오에 새로운 콜센터를 꾸렸다. 이씨는 광저우 조직원 일부를 끌어들였고, 같은 방식으로 올해 5월까지 246명으로부터 11억4,000여만원을 뜯어냈다. 검거 현장에서 대출금 이자를 낮춰주겠다는 수법 외에도 전자제품 판매점 또는 와인수입 회사를 사칭하는 등 총 87개의 사기 시나리오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 보이스피싱 조직이 경찰에 꼬리를 잡힌 건 지난 3월. 경찰은 칭다오 조직의 국내 인출책을 붙잡아 콜센터 위치와 조직원 정보 등을 캐냈다. 하지만 중국과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조직의 ‘몸통’인 콜센터를 일망타진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경찰은 지속적으로 중국 공안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고, 5월엔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직접 중국으로 날아가 “보이스피싱 범죄는 중국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득해 마침내 현장을 급습할 수 있었다.
경찰은 검거된 조직원들의 휴대폰과 모바일채팅 앱 ‘위챗’ 등을 분석해 국내로 들어오거나 체류 중인 공범들을 차례로 체포했다.
경찰은 단순한 인출책과 모집책 검거만으로는 급증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고 보고 국내 불법 환전소와 해외 콜센터 등 범죄수익이 유통되는 ‘돈줄’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두 달간 환치기(불법 환전)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송금액은 경찰 수사로 확인된 것만 242억원에 이른다.
최형욱 지수대 3팀장은 “피해금액 유출 경로를 틀어 막아 금융사기 수사의 질을 높일 계획”이라며 “이번 사례를 계기로 중국 공안과의 협조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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