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스물 아홉 살의 여자입니다. 올해로 사귄 지 4년째 되는 남자친구와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4월에 그가 회사동료와 바람을 피우기 전까지는요. 처음엔 정말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짧은 바람이었고,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울면서 말하는데 저도 마음이 누그러지더군요. 네, 그렇게 용서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화가 나고, 배신감이 커지네요. 지난 번에 싸울 땐 3개월 정도 사과했으면 됐지 더 어떻게 사과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를 놔버리면 그만인데, 4년이나 잘 만나온 사람을 단번에 정리하기도 쉽지 않네요.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연애를 시작할 때, 그리고 결혼 약속을 하면서 우리는 내 눈 앞의 사람이 언제까지나 내게 신의를 지켜주길,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눈 돌리는 일이 없길 기대하고 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커플이, 그리고 아주 많은 부부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그래서 결국 파경을 맞이하곤 하죠. 물론 바람을 피우는 일 자체는 나쁜 일이라는 건 확실합니다. 곁을 지키던 한 사람과의 신뢰를 완벽히 깨버리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걸 나쁜 일이라고 규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일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오죠. 복불복이라는 겁니다. 일단 시작되면 이쪽에선 손쓸 방법도 없고요. 네,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당신이 경험한 이 슬픈 사건은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배신은 오래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일 겁니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결혼식에서의 약속은, 사실은 인간의 본능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웠을 때, 그 행동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그 일을 통해 적어도 관계는 깨어질지언정 나라는 사람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할 테니까요.
처음에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하셨죠? 그 때는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과 지나온 시간에 대한 처연함 때문에 당연히 분노가 컸을테고, 용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가 사과를 하고, 그 일이 어쩌다 보니 일어난 일인 것처럼 표현하니 그 말을 믿고 싶어지는 부분도 분명히 생겨났을 겁니다. 하지만 보세요, 잠시 용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도 잠시, 다시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나요. 저는 처음에 당신이 용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의 결정으로 다시 돌아가 마음 속을 들여다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과를 하든 하지 않든, 그가 먼저 저지른 그 행동에 대해서만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해야 했다고도 말하고 싶고요. ‘이만큼 사과했으니까 그도 뉘우치고 있을거야’ 라는 생각보다 더 중요했던 건, '과연 나는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을 변함없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가, 애정을 갖고 대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채로 덥석 애매한 용서를 해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내적 갈등이 커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가 무릎이라도 꿇고 울며 사과했다고 해도, 당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면 안됐던 것이죠. 용서는, 남이 얼마나 사과를 했는가의 문제가 아닌 내가 정말로 이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에 의해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흔히 자존감을 높여야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하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몰라요. '나는 이런 일을 내게 저지른 사람이라도 좋으니 내 곁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좋겠어. 이 사람보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내 곁을 허락하기에는 나는 소중한 존재야. 신뢰를 깨 버린 사람과는 앞으로 함께 한다고 해도 나는 내 마음이 너무 괴로울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게 좋겠어. 난 단점이 있지만 좋은 사람이고, 신뢰를 지키는 사람을 만날 자격이 충분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높은 자존감의 소유자일 겁니다. 그렇게 자존감이 높고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의 삶에 훼방 놓거나 멋대로 상처 주도록 내버려 두지 않죠. 나쁜 사람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 때문에 한숨 쉬고 슬퍼하는 일까지 일어나진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런 사람은 확실히 더 평온하고 행복한 사랑을 한다는 겁니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건 그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잊을 자신도 없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서 착한 여자 코스프레라도 하듯 선뜻 그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 것은 당신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고, 4년이란 아까운 시간을 위해서도 아니며, 주변의 사람들 시선을 위한 선택도 아닌 오직 스스로를 위한 결정을 내리길 바랄게요. 나와의 신뢰를 깬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면 여기서 접으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용서를 하기 원한다면 더 이상 과거의 일로 그 사람과 말다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 '러브 인사이트'▶ 기사 모아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