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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오! 우리의 보영 여신님

입력
2015.07.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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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는 습한 공기다. 무더위 때문에 잠도 이루기 어려운 요즘, ‘불금’을 달래주는 시원한 청량제 같은 드라마가 하나 나타났는데, 바로 ‘오 나의 귀신님(tvN)’이다.

이 드라마는 ‘납량특집’의 요소를 고루고루 갖추고 있다. 보다 보면 여러 작품이 막 섞여 있는 느낌인데(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자꾸 “예, 솁”이라고 말 하는 건 ‘파스타’ 같고, 귀신이 주인공인 설정은 약간 ‘주군의 태양’ 같은 느낌도 있고), 그게 또 과하다 싶지 않고 재미있다.

더위를 식혀주는 첫 번째 요소는 클래식한 납량특집 소재, ‘귀신’이다. 처녀귀신 신순애(김슬기 분)가 한을 풀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한 음기를 이겨낼 ‘양기남’을 만나야만 하는데, 그게 바로 강선우(조정석 분)다. 처녀귀신 순애는 나봉선(박보영 분)에게 빙의해서 강선우 공략에 나선다는 게 전체 줄거리의 틀이다. 처녀귀신 순애가 냉동창고에 갇힌 봉선을 구하느라 자물쇠나 폭죽 같은 물건을 움직이려 애쓰는 모습은 예전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귀신이 주인공이라 뭔가 한여름 드라마에 딱 어울리는 느낌이다.

'핵귀요미' 박보영의 변신은 무죄!
'핵귀요미' 박보영의 변신은 무죄!

여기에 미스터리 공포물을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강선우의 여동생 사건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다. 요즘 드라마에서 빠지면 안 되는 필수요소가 돼버린 ‘매력적인 소시오패스’ 캐릭터로 최성재(임주환 분)가 등장하는데, 이 사람 나올 때면 오싹해지는 재미가 또 있다. 또 김슬기가 3년 전 죽음에 이르게 된 정확한 사연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박보영과 조정석의 사랑이 진전되면서 이 사연도 서서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양파 껍질 까듯이 하나씩 벗겨지는 스토리 역시 이 드라마의 매력 요소다.

그런데 더위를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매력 한방’은 따로 있다. 바로 ‘핵귀요미’ 박보영이다. 그 동안 박보영은 너무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에 청순가련한 캐릭터 정도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귀여운 얼굴의 박보영이 남자 주인공에게 마구 ‘들이대는’ 장면에서 웃음이 마구 터진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박보영 같은 여자가 “우리 한 번 해요”라며 노골적으로 귀엽게 들이대는 게 말 그대로 ‘판타지’ 아닐까.

박보영이 연기를 잘 하긴 하지만, 만일 스토리 전개상 박보영이 처음부터 무작정 들이대는 캐릭터로 나왔다면 어색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기 잘하는 재주꾼 김슬기가 ‘음탕 처녀귀신’이고, 그 김슬기가 빙의한 박보영이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변신한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이 무난하게 박보영의 변신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박보영은 사실상의 1인 2역을 너무나 깜찍하게 해내고 있다.

여성 시청자들이 볼 때 빠져드는 부분은 또 약간 다르다. 조정석과 박보영의 ‘'꽁냥꽁냥’한 사랑 만들기 과정이 마치 여학생 때 빠져들어서 보던 순정만화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드라마에서 이렇게 잘 어울리고 신선한 남녀 주인공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tvN이 만드는 드라마들의 저력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나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 같은 드라마에서는 그 동안 보기 어려웠던 신선하고 애틋한, 그래서 너무 잘 어울리고, 또 응원하고 싶은 남녀 주인공 커플을 만들어냈다. 검증된 배우, 혹은 아이돌 출신을 선호하는 요즘 지상파 드라마에선 참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오 나의 귀신님’을 보면서 드는 또 다른 생각도 있다.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서는 어떤 길에 대한 부분이다.

‘오 나의 귀신님’ 남자 주인공 조정석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조연이자 씬스틸러인 ‘납득이’ 역할로 주목 받았던 배우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조정석이 그 뒤로 무슨 역할을 맡든 계속 납득이로 보이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나는 재수생 납득이가 자라서 셰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박보영과의 호흡이 워낙 좋다 보니 요즘 조정석은 ‘차세대 로맨틱코미디 킹’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오 나의 귀신님'의 김슬기, 그녀는 주연일까 조연일까. 공식홈페이지.
'오 나의 귀신님'의 김슬기, 그녀는 주연일까 조연일까. 공식홈페이지.

그렇다면 김슬기는 어떨까. 김슬기 역시 다재다능한 배우란 점에서 조정석과 비슷하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 하는 게 없다. 또 조정석처럼 코믹한 캐릭터로 먼저 얼굴을 알렸다. 김슬기가 SNL에서 ‘욕쟁이 여동생’ 캐릭터로 얼굴을 먼저 알린 까닭에 코미디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나이가 많은 베테랑 가수 출신”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노래 실력도 뛰어나고, ‘리틀 김수미’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거나 마구 들이대는 코믹 캐릭터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데다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연기도 되는 배우다. 그러나 아직 김슬기는 ‘비중 있는 조연’ 이상으로 나온 적은 없는 것 같다. ‘연애의 발견(KBS, 2014년)’에서도 주인공 정유미의 친구 역할이었고,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밉상 여동생이었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김슬기는 주연일까 조연일까. 좀 바보 같은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주연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연을 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갖고서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시청자들이 김슬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박보영의 사랑스러운 눈빛 한방에 그대로 빨려 들고, 박보영과 조정석의 찰떡궁합으로 이 드라마를 기억할 것 같다.

지난 25일 방영된 8화 마지막 장면에서 조정석과 박보영이 설레는 키스를 하자, 김슬기가 순간적으로 빙의에서 풀려 빠져나간다. 아주 슬픈 눈빛으로. 처녀귀신 김슬기가 두 사람의 사랑의 기(氣)에 밀려 빠져나가 버린 걸까, 아니면 스스로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 봤자 나만 비참해 지겠구나’ 싶어서 나가 버린 걸까.

결국 드라마 속 ‘신순애의 힘을 빌려서 강선우와 잘 돼 가는 나봉선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김슬기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게 된 배우 박보영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 같아서 약간은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조금 ‘오바’해서 말 하자면,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 라고 해야 할까. 연예계에서, 특히 여배우에게는 아무리 노력해서 연기의 재능을 갖춰놓아도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무기는 바로 강렬한 매력이니까. 연기는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 해도, 매력은 타고나야만 가능한 신의 영역이니까. 아, 그래도 언젠가 김슬기도 매력 쩌는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길. 왜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스레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죄송합니다. 드라마에 빠져들다가 그만 김슬기에 빙의 되었나 봅니다.

방송칼럼니스트

오 나의 귀신님

tvN 매주 금, 토 오후 8시30분

‘내 안에 음탕한 처녀귀신이 산다!’ 처녀 귀신이 빙의된 소심한 주방 보조 나봉선과 자뻑 스타 셰프 강선우가 펼치는 응큼발칙 빙의 로맨스.

★시시콜콜 팩트박스

1) 25일 방송된 ‘오 나의 귀신님’ 8화 시청률은 4.8%(TNMS 기준)였다. 케이블TV에서 ‘마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3%를 이 드라마는 3회 만에 뛰어넘었다.

2) ’오 나의 귀신님’은 웹툰을 기반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생’처럼 기존에 발표된 특정 작품을 드라마화한 것은 아니다. 네이버 지식인에 설명된 바에 의하면 ‘오! 주예수여’라는 웹툰과 ‘나는 귀신과 결혼했다’를 두루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3) 김슬기는 최근 인터뷰에서 “오 나의 귀신님은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캐스팅된 첫 작품”이라고 말했다. 신순애는 마치 김슬기를 염두에 두고 쓴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김슬기에게 딱 맞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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