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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육 생태계 망치는 자사고 정책

입력
2015.07.2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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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다양화’라는 분칠을 하고 등장한 게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일이었다.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자사고를 100개 도입하겠다면서 밀어붙였던 것이다. 교육부는 여전히 자사고를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과 다양한 교육 수요 충족을 위하여 운영되는 학교”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학생과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학교선택권’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들이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다. 대신 학부모의 호주머니 돈에 의해 운영된다. 일반고의 3배 이내의 등록금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1년에 2,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돈 있는 자’만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선택권인 셈이다.

이런 까닭에 ‘다양화’라는 가치 역시 내세우는 말과는 전혀 다른 현실로 이어졌다. 일반고에 더하여 자사고를 도입함으로써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사고-특목고-일반고-특성화고’ 순의 고교 서열화 현상이 심화되고 말았다. 그것도 정확히 계층 대응적인 서열화라는 점에서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당초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던 걸까? 이명박 정부 시절 자사고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은 자사고의 운명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2002년 ‘시범 실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도입된 자립형 사립고의 경험이 존재한다. 귀족 사립학교로 진화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 보아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 다양화’ ‘학교 선택권 보장’ 등의 말을 앞세워 부유층에게 유리한 학교 정책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자사고는 법률적 근거 없이 도둑질하듯 도입되었다. 교육 전반에 파급 효과가 큰 학교 정책을 국회 차원의 공론의 과정 없이 강행한 것이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서였다. 자사고의 원조 격인 자립형 사립학교 도입에는 ‘시범 실시’라는 편법이 동원될 정도였다. 2009년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령안이 의결되어서야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지만, 자사고가 헌법 제31조 제6항의 교육제도의 법률주의를 어기고 있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이렇게 위헌 소지가 다분한 행정입법을 통해 자사고 정책을 밀어붙인 데는 평준화 정책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이 크게 작용하였다. ‘학교 선택권’ 유보를 그 본질로 하고 있는 평준화 정책은 세계 보편적인 제도다. 공공재정이 투입되는 학교의 경우 통학 거리 등을 기준으로 임의 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란 얘기다. 그러나 자사고 정책을 추진한 사람들은 시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대신 학교 민영화 차원에서 학교 다양화와 선택권 부여 등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였다. 그 소산인 자사고 정책이 평준화 정책의 대안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자사고가 귀족학교로 계층차별적인 학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이런 점은 당초 목표치에 훨씬 못 미치는 자사고의 숫자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현재 전국에 총 49개의 자사고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25개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최근 자사고 평가를 둘러싼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의 날 선 공방은 이런 문맥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계승한 현 정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평가 결과를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교육부 장관이 자사고 지정 취소를 직권으로 취소하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갈을 물린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 이념적 잣대로 교육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자사고를 옹호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시정되어 마땅하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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