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는 12세기부터 1차대전으로 독립(1917년 12월 6일)하기까지 근 800년 동안 외세의 지배와 침탈의 역사를 이어온 나라다. 바다를 빼면 서쪽으로는 거친 북유럽 강국 스웨덴이 있고 동쪽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12세기 중엽 스웨덴 십자군이 핀란드를 침략한 이래 나폴레옹 전쟁 등 유럽이 전화에 휩싸일 때마다, 아니 유럽이 평온할 때에도 핀란드는 열강들의 외교전과 군사적 개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영토와 수많은 목숨을 잃곤 했다. 1차대전 말기 독일제국의 헤센 카셀(Hessen-Kassel)가를 왕가로 받들면서 사실상 독일의 속국이 됐고, 전쟁으로 독일(제1)제국이 패망하면서 독립해 공화국을 수립했다.
2차대전 중이던 39년과 40년, 대전과 별개로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벌이지만 패전하는 아픔도 겪었다. 냉전 기간 내내 서유럽과 소비에트 사이에 끼어 북대서양조약기구에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도 가담하지 않으면서 중립을 유지한 건, 한 방향의 첨예한 전선(戰線) 앞에 방패로 서기보다는 견제하는 쌍방의 세력 사이에서 위태롭게나마 균형을 유지하는 게 더 나을(덜 해로울)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핀란드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한 건 소비에트 해체가 거의 마무리된 1994년이었다. 이후 핀란드는 상비군 약 3만5,000명(인구 550만명)에 복무기간 6개월(혹은 1년 공익봉사)의 징병제(18세 이상 남성)를 운영하고 있다.
오늘(7월 27일)은 핀란드 시민들이 17세기부터 전통으로 이어온 ‘National Sleepy Head Day’즉 잠꾸러기의 날이다.(국ㆍ공휴일은 아니다.) 식구 중 가장 늦게 일어나는 이에게 물을 끼얹거나 바다나 호수에 빠뜨리는 풍습이다. 그 풍습은, 유튜브 영상 등을 보더라도, 잠과 게으름에 대한 경계나 징벌의 의미보다는 하루를 함께 시작하자는 다정한 제안이나 격려의 의미에 가깝다. 물벼락에 깬 이에게 식구들은 “Happy Sleepy Head-Day!”라고 인사한다.
토베 얀손의 사랑스러운 무민(moomin)트롤들의 마을 ‘무민 월드(moomin world, 테마파크)’로 유명한 남서부 난탈리(Naantali)시에서는 도시 행정과 시민복지 등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을 매년 비밀리에 선정해 이날 오전 7시에 바다에 빠트리는 이벤트를 여는데, ‘희생양’은 자신에게 닥친 물벼락을 영광의 세례로 여긴다.
잠꾸러기의 날은 중세 로마황제 데키우스(Decius)의 박해를 피해 에페수스(Ephesus)동굴에 숨어든 청년들(에페수스의 성자들)이 200년 동안 잠들었다가 나와보니 새로운 자유의 세상이 열려 있었다는 종교 전설이 그 유래라고 한다. 그들이 기리는 잠꾸러기의 잠은 고된 노역 뒤의 잠인 듯도 하고 긴 핍박의 역사에 대한 위안의 잠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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