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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차별에… 두 번 우는 동성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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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차별에… 두 번 우는 동성애자

입력
2015.07.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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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 대한 불신 높아

긴급상황에도 보호자 권리 인정 못 받고 의료진마저 성 정체성에 보수적

근거없는 편견과 학대

"에이즈 가능성 높아" 낭설에 혐오·소외, 동성애 청소년 자해 문제도 심각

2011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장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제공
2011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장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제공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내 모든 주에서 동성혼인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6일 영화감독 김조광수(50)커플이 서울 서대문구를 상대로 낸 ‘가족관계등록 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사건에 대한 심리가 열리면서 동성애자와 관련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들을 의료건강권의 테두리 밖에 방치해 놓은 현실은 이들의 삶의 의지를 꺾는 또다른 ‘벽’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간은 처음에 남자, 여자, 자웅동체(암수한몸) 등 세 종류의 성이 있었다. 제우스는 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자웅동체 인간을 가운데로 나눠 버렸다. 이에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간절히 갈망하게 됐다. 자웅동체에서 갈라져 나온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게 됐다. 하지만 원래 여자에서 갈라져 나온 여자는 여자에게, 원래 남자에게서 갈라져 나온 남자는 남자에게 끌리게 됐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 사회에는 ‘향연’의 묘사처럼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그리고 바이섹슈얼(bisexual·양성애자), 트랜스젠더(transgender) 등 성 소수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소외자들이다. 과거에는 게이, 레즈비언 등이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단어였지만 세계적으로 동성애자와 관련된 사회운동이 확산되면서 이들 성소수자들의 영문 머릿글자를 딴 ‘엘지비티(LGBT)’가 성 소수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수술동의 등 의료건강권 행사 가능해야”

엘지비티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의료건강권 보장이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2013년 국내 거주 3,208명의 엘지비티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엘지비티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7.5%가 파트너 관계나 공동생활 유지를 위해 수술동의 등 의료과정에서 가족으로 권리행사가 가능해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4.6%는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을 요구했다. 의료건강권이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친구사이 사무실에서 만난 게이 A씨(40)는 “수술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같이 살고 있는 파트너는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다”면서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족을 불러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지만 가족과 관계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의료계에 대한 불신도 높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7%가 의료계가 엘지비티에 대해 비우호적이라 답했다.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성 정체성에 대해 보수적”이라면서 “의료인들이 엘지비티에 대한 편견이 심해 내 자신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게이 한 분이 외과치료를 받으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치료는 하지 않고 동성애자이니 일단 에이즈검사부터 하자는 등 성 정체성이 드러나면 원하지 않는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기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료현장에서 엘지비티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근거 없는 소문도 엘지비티들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대표적이 것이 에이즈(AIDS)와 관련된 잘못된 낭설이다. 일반인들은 엘지비티들이 에이즈에 감염됐을 것이라 믿고 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과장은 “동성결혼을 한다고 해서 에이즈 발병 가능성이 높지 않다”면서 “잘못된 편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친구사이 측은 “엘지비티라 해서 에이즈 등 특정 감염질환으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과 동일하게 암, 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면서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감염에 취약할 것이라 여기는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자를 정신이상자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후 동성애는 진단분류체계에서 제외돼 더 이상 정신장애 질환이 아니지만 엘지비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고착화되고 있다. 박한선 과장은 “동성애는 고대시대부터 존재했고,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됐다”면서 “동성애는 정신치료로 교정될 수 없다”고 했다.

18세 이하 엘지비티 자살ㆍ자해 문제 심각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자살도 문제다. 윤진 중앙자살예방센터 미디어정보팀장은 “18세 이하에서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하는 수가 증가하고 있어 문제”라면서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엘지비티들도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하고 있지만 국가적으로 이들과 관련된 통계가 없어 센터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힘들다”고 했다. 엘지비티 관련 단체 관계자는 “청소년 동성애자 중 절반은 자살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들 중 30~40%는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 엘지비티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8.4%가 자살을, 35.0%가 지해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18세 이하 엘지비티들의 45.7%는 자해를 시도해 문제가 심각하다.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 엘지비티의 40.9%는 자살을, 48.1%는 자해를 시도했다. 기자를 만난 레즈비언 B씨(40)는 “우리사회에서 엘지비티는 혐오 차별 폭력의 대상에 불과하다”면서 “공공장소에서 물리적 폭력과 괴롭힘이 자주 발생해 공공장소에서 파트너와 함께 데이트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직장 내 폭력도 난무하고 있다. 엘지비티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조롱, 차별, 폭력 등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진다.

‘직장에서 업무능력을 인정 받고 있는 레즈비언 C씨(40). 어느 날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메일을 누가 우연히 보고 소문이 나자 지방순환 근무 발령을 받았다. 일종의 권고사직인 셈이다. 성 정체성이 알려지면서 해고 명분이 없는데도 여성은 회사를 그만뒀다. 미국에서는 성적 취향문제로 차별하거나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혹시 차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지 않았다는 증거를 모으고 증명해야 하는 것도 회사의 의무다’(바네사 베이드 저 ‘성적 다양성, 두렵거나 혹은 모르거나’ 중)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성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게이의 경우 여자를 사귀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장동료들이 사생활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성 정체성이 밝혀지면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사회적 냉대, 조롱, 편견에 시달리지만 엘지비티 사회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 친지, 친구에게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요즘 10~20대 엘지비티들은 부모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이종걸 사무국장은 “가족모임에 나온 부모님 중 한 분이 ‘다른 자식들은 결혼을 하면 부모 곁을 떠나지만 이 녀석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수 있어 효자’라고 말했다”면서 “부모들은 자식이 엘지비티라는 사실에 충격, 분노,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지만 최근에는 자식의 성 정체성 문제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엘지비티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이성혼과 같은 법적 결혼을 원하는 엘지비티들이 증가했다”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엘지비티와 관련된 법적,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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