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극단 행동… 2012년 신촌 대학생살인사건
사령카페 빠진 청소년이 벌여
영화 단골소재… 무분별 따라하기
폭력적 콘텐츠·판타지에 현혹
악령이나 주술, 종교와 관련한 범죄는 시대나 문화권을 막론한다. 비현실적 심취가 정신적 불안정을 초래하고,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게 드물지 않은 수순이다.
강령과 관련한 최근의 대표적 범죄사례는 2012년 10대 청소년들이 대학생을 잔인하게 숨지게 한 신촌대학생 살인사건이다. 사건 가해자들은 당시 16~21세의 어린 나이로, 인터넷 사령(死靈)카페에 빠져 피해자와 갈등을 벌이다 범행을 저질러 충격을 줬다. 사령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한다. 사령카페에서는 악령을 쫓는 방법과 경험을 공유하거나 ‘악령이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사령을 불러 함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0여 차례 난자한 범행수법에 대해서도 일부 네티즌들은 악령을 쫓는 방법 중 기를 담아 칼로 수 차례 찌르는 방법이 있다면서 사령카페에서 배웠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법원은 이 사건 가해자 중 살해 주범인 이모군과 윤모군은 징역20년, 살인 현장에서 망을 본 홍모양은 장기 12년에서 단기 7년을, 피해자의 전 여자친구이자 살인을 방조한 박모씨는 징역 7년을 확정 선고했다. 지난해 이 사건을 영화(신촌좀비만화)로 다룬 류승완 감독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를 만든 지금도 실제 사건을 벌인 친구들의 심리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사실 대중의 관심을 좇는 영화가 부작용 내지 후유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컬트 현상을 소재로 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엑소시스트’이전부터 도도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귀신을 불러내는 일본어 주술 주문인 분신사바는 1990년대 교실에서 유행했던 놀이다. 이를 소재로 삼은 영화 ‘분신사바’는 지난해 속편까지 나왔다. 서양에서도 혼령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분신사바와 비슷한 게임을 다룬 영화가 지난 4월 개봉한 ‘위자’다.
대부분 호기심과 재미로 관심을 갖지만 일부는 심각하게 빠져들어 현실과 창작을 분간하지 못하고 모방하게 되는 게 문제다.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례도 많다. 2001년 800만명 관객이 들면서 흥행한 영화 ‘친구’의 경우가 그렇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수업 도중 교사와 급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흉기로 급우를 찌른 부산의 한 고교생은 학교에 가지 않은 채 친구를 40번 넘게 본 후 용기를 얻어 살해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2013년 경기 용인시에서는 심모군이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 후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제2의 오원춘 사건이라 불린 이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가 10대라는 게 경악스러웠다. 심군은 경찰에서 “영화 ‘호스텔’을 보면서 살인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고, 평소에도 잔혹한 영화를 즐겨본 것으로 전해졌다. 2005년 개봉한 공포영화 호스텔은 여행객들을 잔인하게 고문해 살해하는 것을 즐기는 내용이다.
1994년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박한상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드레스드 투 킬’을 보고 토막살인을 저지르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빛은행 중랑교지점 은행강도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은 영화 ‘히트’를 여러 차례 보면서 범행계획을 세웠다.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이 개봉한 이후에는 실제 이를 따라 한 주유소 강도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최초의 모방범죄를 일으킨 영화로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71년 작 ‘시계태엽 오렌지’가 꼽힌다. 영화 주인공들처럼 ‘사랑은 비를 타고’ 주제곡(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면서 십대 소녀를 강간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영국은 27년간 이 영화 상영을 금지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다크나이트 라이즈’ 상영 도중 무차별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범인 제임스 홈즈(당시 24세)는 스스로를 전편인 ‘다크나이트’ 속 인물인 ‘조커’라고 칭했다. 조커처럼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한 데다 배트맨 시리즈 영화의 원작만화에서 한 남자가 극장을 급습해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이 이번 사건과 유사해 모방범죄의 전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전임교수는 “‘공포영화가 싸이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싸이코를 창의적으로 만들뿐이다’라는 말이 있다”며 “억압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는 등 평소 문제를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폭력적인 콘텐츠가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망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