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진뫼마을 찾는 김도수씨, 농사 짓고 이웃 챙기며 고향 기록
부모님 생전에 가꾸던 고추밭엔 그리움 담아 '사랑비' 빗돌 세워
시골에서 자란 나이 든 사람이라면 더 살갑고 애틋하게 읽게 될 이 책을 ‘옛날엔 그랬지’하는 회고쯤으로 넘기면 곤란하다. 그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귀한 것들을 잃어버렸는지 통감하고 반성해야 옳다. 이를테면 가난해도 더 힘든 이웃을 챙기며 더불어 사는 미덕, 사람이든 미물이든 보잘것없는 것들도 천대받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든든함 같은 것들.
‘징글징글하게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 김도수(56)씨가 고향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 산문집이다. 섬진강변 두메산골, 진뫼마을이 그의 고향이다. 남에게 팔려버린 고향집을 12년 만에 되찾고 나서야 밤마다 진뫼마을을 해매던 꿈에서 벗어났다. 직장 때문에 인근 소도시에 살지만 주말은 꼭 고향집에 와서 농사 짓고 마을 어르신들 섬기며 마을 일을 챙긴다. 관공서 표지석으로 끌려간 마을 강변 바위를 간절한 민원편지 끝에 데려오고, 시멘트 독성에 죽어가던 마을 정자나무를 갖은 애를 써서 되살리기도 했다.
제목의 사랑비는 부모님이 생전에 땀 흘리던 고추밭 가장자리에 세운 비석이다. “취직되면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뫼로 달려오라”던 어머니는 취직 하고 보니 이 세상에 안 계셨다. 그 말씀이 가슴에 사무쳐서 첫 봉급 타던 날, 따로 통장을 만들어 속옷 값을 넣었고 그 뒤로 줄곧 이건 술이라고, 이건 겨울외투라고, 이건 용돈이라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자그마한 빗돌을 세웠다.
앞면에는 이렇게 새겼다.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뒷면에는 “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라고 새겼다. 사랑비 세우던 날에는 음식 장만해서 마을 어른들께 대접했다.
책에는 저자의 부모님, 특히 어머니 이야기가 많다. 손톱 다 닳도록 고생해도 자식들 학교 갈 차비도 없어서 발 동동 구르며 애달파하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모두가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란 또래들, 변변치 않지만 맛나게 먹던 그 시절 소박한 음식, 이 모든 것을 품어준 정다운 산천에 아낌없이 사랑을 바치고 있다. 마을공동체를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여실하다. 구석구석 살뜰히도 챙긴 고향 추억들이 흐뭇하면서 안타깝다. 짠한 구석이 있는가 하면 더러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도 있다. 직접 인용문은 전라도 말 그대로 써서 흙냄새가 더 진하다.
뿌리 없는 삶,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마는 잊고 지내거나 때를 놓치고서야 돌아보기 쉬운 존재가 뿌리이고 부모다. 젊은이들은 다 떠나고 노인만 남은 작은 마을, 빈집투성이라 밤이면 드문드문 불 켜진 게 깊은 산속 절간처럼 적막한 고향을 지키는 저자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온다.
고향집을 되찾은 날, 그는 여러 해 간직했던 낡은 보따리를 고향집 안방에 풀었다. 고향집 사서 돌아가면 일할 때 입으려고 챙긴 헌 옷과 해진 양말, 낡은 운동화, 쓰다 남은 실장갑 등이 그 안에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언젠가 저 보따리, 고향집 안방에 꼭 풀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던 나의 보따리처럼 누구든 꿈보따리 하나씩은 보듬고 살아가길.”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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