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합동실무단이 주한미군 탄저균 배달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해 오산기지 현장조사를 실시한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다. 앞서 미국 국방부가 보고서를 통해 살아있는 탄저균이 한국에 배달된 데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실수”라고 잘못을 공식 인정한 데 따른 조치다. 이번 현장조사는 당연하나, 매우 때늦은 조치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5월 말 미군의 탄저균 국내 밀반입이 알려진 이후 한 달 넘도록 우리 정부는 미국측 조사를 먼저 지켜보자며 사실상 사건을 방치해 왔다.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한미합동실무단도 한 달 보름이나 지난 이달 12일에야 구성됐다. 맹독성 세균인 탄저균이 우리 당국의 통제나 감시를 전혀 받지 않은 채 반입돼 국민 안전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 처했는데도 “감염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주한미군의 잠정 발표만 믿고 당국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현장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미군의 주장대로 탄저균의 국내 반입이 정말 처음이었는지, 다른 생물무기 실험을 한 전력은 없는지, 탄저균 샘플과 제독 폐기물이 제대로 처리됐는지 등 모든 게 의문이다. 그렇잖아도 미군이 2013년부터 국내 몇몇 미군기지 연구실에서 생물학전에 대응하는 실험인 ‘주피터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는 증언이 나오는 마당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렇게 위험한 세균이 들어오는데도 위험물질의 반입을 통제하고 관리ㆍ감독하는 협정이나 법규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은 반입된 탄저균 표본이 비활성화 상태인줄 알았기 때문에 통보하지 않았다고 하나 잠재 피해의 위중함 등을 생각하면 이런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안전장치를 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지난 15일 외교부에서 열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에서 미군이 재발방지를 위한 협조를 약속했으면서도, SOFA 관련 규정 개정에 난색을 표한 것은 이런 점에서 유감스런 일이다. 현행 규정은 미군에 탁송된 군사화물에 대해서는 세관검사를 할 수 없어 미군이 알려주지 않는 한 우리 당국이 위험물질 반입을 알아 낼 방법이 없다.
북한이 대규모로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학 무기에 대비해야 하는 군사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균 실험과 같은 민감한 사안이 투명하고 적법한 절차 없이 비밀리에 이뤄지는 것은 양국의 전략적 이익이나 전체 한미동맹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조사가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이뤄져 신뢰를 되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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