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잠깐 다녀왔다. 계획에 없던, 충동적인 방문이었다. 후배가 돗토리현의 사구를 보러 가자기에 군말 없이 따랐다. 사실, 어딜 가든 별 상관은 없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일본엘 간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으니까. 돗토리는 일본에서도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라고 한다. 주말임에도 공항이나 기차역 광장엔 사람이 드물었다. 한국의 어느 지방 소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이었는데,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되레 너무 익숙해 한동안 이곳에서 살아본 적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거리를 슬슬 걷다가 체크인 시각에 맞춰 숙소에 짐을 풀었다. 창밖에 일본식 정원이 말끔하게 조성돼 있는, 다다미 여덟 장짜리 여관방이었다. 1층에 구비된 온천에서 반신욕을 하고 유타카 차림으로 돌아와서는 에어컨 바람 아래 몸을 뉘었다. 뭔가를 비우고 싶어서 한국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건데, 낯선 방에 등 붙이고 있자니 잊고 있던 것들이 외려 더 생생하게 뇌리를 선회했다. 혼란스럽기보다는 그저, 너그럽고 인자한 손이 더운 이마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잊으려고도 깨우치려고도 말고 그저 바라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려앉는 눈꺼풀과 함께 서서히 지워져갔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들었다. 깨고 나선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졌다. 황망했지만, 그게 행복이라고 잠깐 생각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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