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화장실에 가도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된다. ‘여기 어디 몰래카메라가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서다. 전등 스위치도 괜히 노려보고 휴지통에 신문지로 뭘 숨겨놓진 않았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서조차 불안에 떨어야 하는 처지니,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기 참 쉽지 않다.
한 여자의 일상을 생각해보자. 건강을 생각하는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헬스장으로 향한다. 1시간 정도 운동을 끝내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다. 헬스장에서 바로 옷을 챙겨 입고 직장으로 향한다. 그녀의 직장은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다. 급한 마음에 지하철 계단을 뛰어오른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점심시간이 지나 화장실에 간다. 오후엔 짬을 내 회사 앞 구둣방에 가서 부러진 굽을 갈았다. 저녁엔 혼자 사는 그녀의 원룸으로 돌아와 맥주를 한 잔 한다. 이 평범한 일상에서 그녀가 몰래카메라 피해를 당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일상이 지뢰밭이다. 많은 여성이 몰래카메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헬스장의 샤워실, 지하철, 사무실, 구둣방, 원룸 모두 몰래카메라 피해가 일어난 곳이다. 몰래카메라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져서 핸드폰은 물론이고 나사, 스위치, 휴지통으로도 숨어들었다. 일상적인 공간인 지하철이나 사무실에서도 ‘몰래’ 찍는다. 학교에도 있다. 6월 25일엔 수년 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어온 서울대 조교가 붙잡혔다. 파일을 20개 만들어놓고 각각 파일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놨다고 한다. 7월 5일, 홍익대학교 건물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전등 스위치로 위장한 아주 작은 카메라였다. 원룸에 설치된 몰카는 집주인 아들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집주인에겐 만능의 마스터키가 있었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이런 ‘몰래카메라 사건’에 관련한 기사를 읽는 와중에도 이런 기사, 광고, 사진이 옆에 같이 뜨는 거다.
“여대생, ‘음란행위’ CCTV에 딱! 경악!"
기사에 붙은 광고도 동시에 노골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관음 하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잠들어 있는 여성의 몸을 훑는 사진, 떨어진 문서를 줍다 올라간 치마를 내리는 사진이 번갈아서 번쩍인다. 경악스런 움짤이 번쩍이는 이 음란마귀들의 발할라(Valhalla·궁전)에서 당황하고 있는 건 나뿐인가 싶다.
몰래카메라도 많지만, 몰래카메라와 다를 바 없는 ‘시선’이 더 많다. 여성은 일상에서 관음의 시선에 노출 된다. 얼마 전 구글의 ‘음란한 검색’ 결과가 화제가 되었다. 한국어로 ‘ㄱ,ㄴ,ㄷ,ㄹ’,‘ㅏ,ㅑ,ㅓ,ㅕ’만 검색해도 여성의 야한 사진이 수두룩하게 쏟아진다는 것이다. (▶ 관련기사 보기) 길거리를 검색해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찍은 야한 사진이 뜬다. 단어에 음란함을 끼얹은 건 누구의 소행일까. STREET를 검색하면 똑같은 ‘길’인데 그냥 ‘길’이 나온다. 멀쩡한 ABCD와 이상한 가나다라. 이런 검색 결과는 이용자가 만든다. 그 검색결과를 선택한 이용자가 많으면 그 빈도순에 따라 우선해서 해당 결과가 뜬다. 그러니까, 길거리를 검색할 때 길거리에서 여성들 치마 속을 도둑 촬영한 사진이 뜨는 건 사람들이 그 사진을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
● 몰래카메라만큼 무서운 당신의 눈
화장실 타일을 뚫고 힘들게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도 참 한숨이 나오지만 그 카메라 뒤에 달린 수많은 눈을 생각하면 더 무섭다. 몰래 남을 찍고, 그걸 돌려보고, 품평하는 게 ‘나쁜 짓’이란 인식이 없단 뜻이다.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면, 각자 손에 카메라 한 대씩은 기본으로 쥐고 있을 거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핸드폰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전화 되는 카메라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남을 찍고 녹음도 하고 대화도 언제든 그대로 캡처해 남겨둘 수 있는, 우리는 언제든 남을 몰래 기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잘못 쓰면 독이 되는데, 무엇을 찍어도 되고 무엇을 찍으면 안 되는지 우리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남의 용변 장면을 보는 변태를 많은 사람들이 확신에 차 비난한다. 그렇지만 아마 당신도 ‘몰래 남을 찍고, 그걸 돌려보고, 품평하는 것’에 이미 무감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 몰래 찍은 영상을 소비하고 있진 않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 대학교에서 한 커플이 인적 없는 대학 건물 옥상에서 야외 섹스를 했고, 이 광경을 수 십 명, 수백도 아니고 수 만 명이 지켜봤다. 어디서? 그들의 핸드폰,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촬영자는 건물 건너 높은 곳에서 그들을 ‘몰래 찍어’ 이 동영상을 유포했다. 촬영자가 그들을 몰래 찍으며 웃는 소리가 영상 안에 모두 녹음 되었다. 이 영상을 두고 사람들은 누구에게 돌을 던졌을까? 당신은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
실제로 눈앞에서 그 광경을 본 사람이 몇인지는 모르겠다. 빈 옥상에서 섹스 하는 커플을 멀리서 찍으며 킬킬대던 카메라 앵글 밖의 ‘촬영자’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고. 그는 몰래 그들을 찍었다. 이것도 ‘몰카’다. 몰래 찍는 카메라. 그렇지만 공공장소인 옥상에서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했으니 찍어도 할 말이 없다고 누군가는 생각했다. 그리고 화면 속의 커플에게만 돌을 던지지, 몰래 그 장면을 찍으며 킬킬대는 촬영자에겐 돌을 던지지 않았다.
이 커플이 ‘참 잘했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래 찍은 동영상’에 관대한지, 나는 그게 무섭다고 생각했다. 킬킬대고 웃으며 그 동영상을 찍은 사람은 앵글 밖에 숨고 앵글 안에 담긴 섹스 하는 커플만 비난을 받았다. 몰래 찍히고, 원치 않게 그 장면이 유포되어도, 찍힌 사람만 드러나고 찍은 사람은 도마에 오르지 않더라.
서로 찍고 찍히고 전시하고 품평하는 사회. 우린 찍히길 원치 않는 장면을 찍히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내가 아무데서나 아무렇게 전시되길 원하지 않듯이 남도 아무데서나 아무렇게 전시하면 안 된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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