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가 오백만 달러 벌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원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가 오백만 달러 벌었는데 그녀는 오히려 원망"

입력
2015.07.24 09:53
0 0

처음 오백만 달러를 벌었을 때, 내 나이 46세였고, 그녀가 나보다 더 기뻐해 줄거라 믿었다.

"이제 당신을 만날 수 없어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

"제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잖아요."

원망하는 말투 ….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전에 알고 있던 나의 존재는 …. 접시닦이와 홀매니저를 겸한, 일용직 인생이었다. 그녀는 시튼 도서관 자원봉사 사서였고, 책을 추천하곤 했다. '체 게바라 경제학'도 그녀가 추천했던 책이었다. 그녀가 추천해준 책들은 ….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들이었다. 샌드위치 점심 식사를 함께 했을 때,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 좋아요.' 라는 말도 했다. 그녀는 나보다 어렸고, 뉴욕대 학생이었다.

나는 그녀가 좋았는데 …. 사랑은 아니었고, 마음이 통하는 말동무 정도였다. 말동무 …. 내 인생에서 그 정도면 충분했다.

시튼 도서관에서 깨달은 것은 …. 세상을 원망하지 말라. 세상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현실적인 생존전략을 수립해라, 망상에 빠지지 말라, 사람을 이해하라, 이 세상에 나쁜 것은 없다 ….

그녀는 사회주의 신념을 가진, 작고 귀여운 여성이었다. 우리 의견이 달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였다. 그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둔 복지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 모델로 생각했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인민들의 가난과 고통을 자본가의 착취 때문이라고 지랄한다. 그들이 혁명에 성공하여, 자본가를 몰아내고, 모든 이익을 인민들에게 나눠주었을 때,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 모든 이윤을 노동자들에게 안겼지만, 가난은 계속되었고 오히려 중세 시대 마녀사냥과 같은 …. 반동분자들을 사냥하지 않았던가? 공산주의의 대부 레닌은 소련의 부흥을 위해, 회계관리를 정직하게 하고, 절약하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도둑질 하지 말고 …. 열심히 일하라고 지랄 떨었다. 레닌의 지랄 ….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접 떨던 것과 같지 않은가?

사회주의가 나쁜다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는 국가나 조직을 이끄는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없다. 하나의 옵션으로 밸런스 메이커로 작동할 뿐이다. 그래야 평화와 번영이 오래갈 수 있다.

앞뒤 없는 정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 이념이나 정치를 논하는 것보다, 인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게 행복의 조건이니깐 ….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때, 소모적인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녀 말대로 사회주의가 좋은 것일지라도, 강요한다면 ….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면 …. 그건 정말 지독한 비극이 아닐까? 그녀는 종교를 믿지 않았는데, 누군가 그녀에게 종교를 강요한다면, 그녀가 행복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이야기를 지껄었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아직 한 달에 삼천 달러를 간신히 벌던 밑바닥 인생이었다. 그녀는 나를 따듯한 눈길로, 먼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인양, 바라보았다. '당신이 틀렸지만,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대충 이런 메시지의 눈빛이었다.

내가 백만 달러를 벌어들이자 …. 그녀는 기뻐해주었지만, 동참해주지 않았다. 잠깐의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곧 사라져버릴 …. 줍은 돈이라 여기는 듯 싶었다.

이제 솔직히 말하자.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내가 그녀에게 엄청난 부와 자유와 권력을 준다면, 그녀는 나를 저주하고 미워할 것이다.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가난이 익숙하고, 이 세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믿어야 편안한 사람이다. 내가 그녀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어도, 다른 해석을 알려주어도, 악마의 속삭임에 불과할 뿐이다.

"루시를 생각하고 계시군요."

AI 루시가 뜬금없이 등장했다. AI는 오른쪽 에어스크린으로 나타났는데, 단정한 오피스 복장의 단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매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조합한 홀로그램 영상은 나의 취향을 분석한 결과였는데, 홀로그램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 난 참 평범한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정도였다. 그나저나 AI는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아낸 걸까? 표정, 호흡, 몸짓, 체온, 심박수, 혈류속도 ….

"몰라요. 그냥 알아요. 이런 게 사랑인가요?"

한국스포츠경제 webmaster@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