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많은 이들에게 일생일대의 로망이자 버킷리스트이지만, 열악한 열차 환경 때문에 여행 자체를 망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자 역시 “반 거지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에 지레 겁을 먹었지만, 막상 타고 보니 말 그대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열차 안에서 씻는 것도, 자는 것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특별히 결벽증 수준의 청결 개념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야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여정 중 열차 내 생활 최장 구간인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총 3박 4일, 62시간을 타본 경험을 밑천 삼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좀 더 쾌적하게 살아남는 팁을 정리해봤다.
1. 골프공도 좋지만, 머리 감는 데는 바가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가장 큰 문제는 씻는 거다. 씻을 데라곤 화장실 세면대가 고작. 그마저도 세면대 구멍이 그대로 뚫려 있어 물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구멍을 막는 게 급선무다. 여느 여행 안내책자엔 골프공을 가져가면 딱 들어맞는다고 했으나, 미처 준비하지 못한 탓에 각종 도구로 틀어 막아서 세수를 했다. 강력테이프도 동원 됐지만, 그냥 적당히 무게가 나가는 물건(유리컵)들로 막아도 물은 모인다. 문제는 머리 감기. 드라이 샴푸로 하루를 버텼지만(사실 이틀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나름 효과가 있었다) 머리 감기 한번은 시도해보자고 마음 먹고 일행 중 한 명이 현지 마트에서 구입한 바가지를 빌려 도전해봤다. 세면대에 굳이 머리 들이밀지 말고, 그냥 적당히 샴푸로 거품을 낸 후 바가지에 물을 받아 대여섯 번 머리에 끼얹으면 개운하게 끝. 바닥에 물이 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금방 물이 빠져서 뒤 사람 눈치를 볼 필요 없다.
2. 열차 안에서 카톡도 가능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어 전송해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서 열차 안에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그야말로 광활한 시베리아 대륙을 끝없이 달리는 구간에선 그냥 애태우지 말고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낫다. 아예 먹통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간이 휴대폰이 연결될 때가 있는데, 밀린 문자나 깔아놓은 언론사 앱에서 알려주는 속보 알림이 울릴 때 반갑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부랴부랴 가족 지인들에게 생존 신고 겸 안부 카톡을 날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극히 매우 드물었다는 게 문제다. 다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마을이나 도시가 중간 중간 나오는 구간은 그나마 3G 연결이 잘 돼서 카톡은 물론 기사 및 사진도 전송할 수 있을 만큼 연결 상태가 좋았다.
전자장비를 많이 가지고 여행하는 경우 충전이 가장 골치 아픈 문제다. 기자들도 이 문제가 가장 걱정돼 노트북 보조 베터리, 휴대폰 보조 베터리를 한 가득 챙겨 갔지만, 결론적으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객실마다 한 개의 콘센트가 있고, 복도에도 콘센트가 중간중간 배치돼 있다. 충전 수요가 많을 경우를 대비해 적당한 길이의 멀티탭 하나만 챙겨가도 충분하다.
3. 승무원들과 친해져라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또 다른 마스코트는 객차 승무원들이다. 이들은 여정 내내 맡은 객차를 전담하는 통에 친해지면 두루두루 편해진다. 열차 안에 갇혀 있다는 점에서 승무원들도 승객들과 같은 처지. 승무원들이 기거하는 객실엔 전자레인지, 개수대 등 조리 기구가 훨씬 잘 갖춰져 있는 만큼 친해지면 알아서 햇반도 데워주고, 컵도 씻어준다. 라면에 넣어먹을 계란을 구해다 주기도 한다. 물론 무작정 부탁할 게 아니라, 우리의 간식을 나눠주는 미덕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취재진의 객차를 담당한 경력 8년차의 스페트라나(29)씨는 계속된 근무로 4개월 간 만나지 못한 남자친구를 열차의 정차역이었던 치타역에서 만났고, 이 모습을 우연히 사진기자가 포착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재회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스페트라나씨는 원래 모스크바 구간만 전담하는 승무원인데 유라시아 친선특급 전세 열차 운행 지원 차원에서 이 열차에 올랐고, 마침 남자친구의 근무지가 친선특급이 지나가는 치타역 근처라서 극적이 재회가 이뤄지게 된 것. 친선특급이 두 청춘남녀의 사랑을 확인해준 메신저가 된 셈이다. 스페트라나는 이 사진을 보고 엄지를 치켜 들며 많이 행복해 했다.
4. 탈취제와 커피 티백을 잔뜩 챙겨라
대륙횡단 열차 안내 준비물에 탈취제가 써 있길래 짐도 많은데 굳이 필요할까 싶어 적당한 공병에 따로 덜어 가지고 갔는데, 제품 통째로 들고 올 걸 가장 아쉬워했던 물건이다. (식당칸은 보통 12시에 마감을 하기 때문에) 심야시간엔 객실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술도 마실 수 밖에 없다.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아무리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해도 냄새는 베기 마련. 이때 탈취제를 싹싹 뿌려주면 한결 쾌적해진다.
티백과 커피도 많이 챙겨 가면 유용하다. 식당칸에서 커피는 공짜로 주지 않는다. 대신 뜨거운 물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구비 돼 있다. 텀블러에 물을 받아다 한잔의 차, 커피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객실 내 콘센트가 있는 만큼 라면 끓여 먹는 전기포트도 가져가면 물을 받아다가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다.
5. 정차역에 내릴 때 스트레칭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서울은 더운데 시원한 데 가서 좋겠다”였지만 그야말로 착각이었다. 러시아도 여름엔 38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기온이 높고 무엇보다 햇볕이 매우 강하다. 다만 습도가 높지 않아 불쾌감을 주는 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더위 먹기에 충분한 날씨였다. 건강관리에 철저히 유의를 해야 한다. 열차가 정차하면 무조건 내려서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해서 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게 좋다. 좁은 침대에서 자는 것 자체가 몸에 상당한 피로를 안겨준다. 보통 역엔 육교가 많은데 슬슬 올라갔다 오면 운동도 되고 열차 전체 컷을 담기도 용이하다.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모자 선글라스는 필수고, 자외선 차단제도 꼼꼼히 발라야 한다. 다만 열차 내 에어컨이 매우 잘 가동되고 바깥 날씨도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바람막이 긴 팔 한 벌 준비해가면 좋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