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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벨롱장… 좌판마다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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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벨롱장… 좌판마다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북

입력
2015.07.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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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들의 벼룩시장으로 시작, 2~3년 새 20여곳으로 늘어나

직접 만든 공예품·지역 농산물 망라, 주민과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잡아

'플리+프리마켓' 플프마켓으로 진화

세화 벨롱장·서귀포 예술시장 등 입소문 타고 관광객 발길 이어져

제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벼룩시장인 제주시 세화 벨롱장이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서 있다. 원래 세화해변도로에서 열렸지만 올 6월부터 세화포구로 옮겨지면서 풍취가 더해졌다. 제주=김영헌기자
제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벼룩시장인 제주시 세화 벨롱장이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서 있다. 원래 세화해변도로에서 열렸지만 올 6월부터 세화포구로 옮겨지면서 풍취가 더해졌다. 제주=김영헌기자

한적했던 해변 마을에 장이 섰다. 순식간에 사람들로 붐볐다. 좌판이 벌어지고 맛깔스런 냄새가 퍼졌다. 한쪽에서는 거리 악사의 음악 소리가 흥겹게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다시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졌다. 한여름 밤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매주 토요일 제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 세화리 포구에서는 ‘벨롱장’이 선다. ‘벨롱’이 제주말로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을 뜻하는 것처럼 장은 한 순간 반짝했다가 사라진다.

지난 18일 오후 5시쯤 세화해변 뒤쪽에 위치한 세화5일장 안으로 큼직한 가방들을 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들기 시작했다. 벨롱장 야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셀러(판매자)들이다.

벨롱장은 평소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세화포구에서 열리지만, 6월부터 9월까지는 한 달에 한번 야시장이 선다.

셀러들은 조그만 좌판에 손수 만든 팔찌와 목걸이, 가방, 목공예품 등 가지각색의 물건들을 펼쳐 놓았다. 다른 한쪽에서는 수제 소시지와 감귤 주스, 떡볶이 등 먹거리도 한가득 자리를 차지했다.

야시장 개장 시간은 오후 6시부터지만 30분 전부터 어디선가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좌판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손에는 물건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다시 장터를 기웃거린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눈요기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장터 한쪽에서 거리 악사가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행드럼’이라는 요상한 악기를 두드리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애들도 난생 처음 보는 악기가 신기한지 한동안 꼼짝하지 않은 채 서있었다.

벨롱장은 2013년 2월 세화리 인근 게스트하우스나 카페, 공방 등을 운영하는 이주민들이 자신들이 갖고 온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조그만 벼룩시장으로 시작됐다. 당시는 단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로 장을 열었다. 한달 정도 지나 벨롱장이라는 이름까지 붙었고, 입소문을 탄 후 참여하는 셀러들이 많아지면서 규모도 커지고 판매하는 물품도 다양해졌다.

벨롱장 셀러가 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 조건만 맞추면 된다.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 즉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 등록된 셀러는 300여팀. 제주도민들도 있지만 대부분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주민들이다. 이들은 벨롱장에서 서로 친구가 됐다. 어떤 셀러들은 판매는 뒷전이고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단순한 물건을 팔고 사는 장이 아닌 소통의 공간이 된 것이다.

벨롱장은 지역주민하고도 소통한다. 벨롱장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지역주민들과 섞이기 위해서다. 이날도 구좌지역 대표 농산물인 당근을 홍보하기 위해 재배농가들이 나와 시범 좌판을 벌였다. 처음 벨롱장이 해안도로에서 열릴 때는 주차 문제로 주민들이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벨롱장이 뜨면서 마을홍보 효과는 물론이고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한번은 방문해야 하는 관광지로 인식되면서 지역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 해변을 돌아다니면 조개를 주워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제작해 판매하는 셀러 샐리민(벨롱장에서는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은 여행을 왔다가 제주가 너무 좋아 아예 정착했다. 남편도 제주를 여행하다 만났고, 지금은 서귀포 남원읍에서 민박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샐리민은 “최근 민박과 카페를 시작하면서 바빠졌지만 벨롱장에는 시간을 내 참여하고 있다”며 “장에 오면 좋은 사람들과 파티를 하는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모였다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요즘 제주는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 중 한 곳이다. 그런 제주에 ‘인생 2막’을 꿈꾸기 위한 이주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1만명이 넘게 제주에 내려와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

이주민들이 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생겨난 문화 중 하나가 플리마켓(벼룩시장)이다. 안 쓰는 물건들을 다른 사람과 교환하거나 판매하는 시장으로 이미 서울 등 타 지역에서는 유행했지만 최근 제주에서 도심을 비롯해 한적한 농촌지역까지 퍼지면서 열풍이 불고 있다.

다만 제주 플리마켓이 타 지역과 차별화되는 것은 지역주민들보다는 이주민들이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제주의 플리마켓은 중고물품 거래보다 직접 손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 위주의 아트마켓 성격이 강하다.

더 특이한 점은 제주 플리마켓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몇몇 플리마켓은 아트마켓 중심이었지만, 여기에 문화와 지역 농산물이 자연스럽게 결합됐다. 이 때문에 지금 제주 플리마켓은 작가, 예술가, 전문가 등이 시민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프리마켓(free market)과 지역주민들 간에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플리마켓을 조합한 ‘플프마켓’으로 진화하고 있다.

제주 플리마켓의 역사를 보자면, 그 시작은 서귀포 이중섭 문화의 거리에서 열리는 서귀포예술시장이다. 현재 제주에서 가장 대표적인 플프마켓은 세화 벨롱장이지만, 서귀포예술시장은 그보다 훨씬 전인 2008년 7월부터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서귀포예술시장 이후 몇몇 플리마켓들이 열려 왔지만, 최근 2∼3년 사이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이곳저곳에서 생겨나 지금은 20여 곳에 이르고 있다.

제주시 지역에서는 세화 벨롱장을 비롯해 가수 이효리가 셀러로 참여해 화제가 됐던 반짝반짝 착한가게, 농산물장터에서 화덕피자 등 이색적인 먹거리와 핸드메이드 제품들이 결합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아라올레 지꺼진장, 주민자치위원회가 직접 주관해 장터를 운영하는 모흥골호쏠장, 수익금 일부를 희귀성 난치병 후원기금으로 기부하는 협재 뜨레비양 보름장, 도내 플리마켓 중 유일하게 밤에 열리는 심심한 밤 배고픈 밤 등이 있다.

서귀포시 지역만 해도 서귀포 예술시장과 우리나라 태풍 소식을 가장 일찍 접할 수 있는 법환 포구에서 열리는 소랑장,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한데 어우러지는 섶섬 구두미 프리마켓 등이 알려져 있다.

장터는 예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살을 부대끼며 정을 나눠왔다. 제주 플리마켓들도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정과 이야기를 판다. 여기에 관광객들은 추억을 덤으로 얻어갈 수 있다.

제주=김영헌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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