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6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명예 부회장의 선택은 세계 축구대통령 도전이었다. 지난 21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FIFA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차기 회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정 명예회장은 23일 미국·캐나다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골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는 미국으로 출국,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섰다.
여권에선 내년 총선의 핵심 카드이자 차기 대선 주자로 분류된 그는 왜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FIFA 회장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을까. 2002 한·일월드컵 성공개최 이후 정계와 축구계를 오가며 시도된 정상 도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가 FIFA 회장 도전을 선택한 이유를 짚어봤다.
● 2002년 : 오판으로 눈물 삼킨 대권 도전
한·일월드컵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2002년 말, 당시 대한축구협회장과 FIFA부회장을 겸임하며 월드컵 성공 개최를 이끈 정 명예회장은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대권 도전에 나섰다. 국민통합21 후보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그는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힘을 합치기로 했다. 후보 단일화 방법론을 두고 진통을 겪던 두 사람은, 지지율이 하락한 정 명예회장이 결국 노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면서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선거 하루 전인 12월 18일 밤 노 전 대통령의 합동유세 발언을 문제 삼아 돌연 선거 공조를 파기했다. 결과는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정 명예회장의 지지 철회가 되레 진보진영의 결집을 도와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순간의 오판으로 패자가 된 셈이다.
● 2011년 : FIFA 부회장 낙선의 나비효과
2011년에는 1994년부터 약 17년간 장기 집권했던 FIFA 부회장직을 내려놓았다. 정 명예회장은 2011년 1월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요르단의 알리 빈 알 후세인 왕자에 FIFA 부회장 자리를 내줬다. 연임을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 각국을 돌며 표를 호소했지만, 중동 세력을 하나로 결집시킨 알 후세인 왕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의 FIFA 부회장 낙선은 사실상 ‘정몽준 1인 외교’에 기댔던 대한축구협회의 외교력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초래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축구계에 안긴 파장도 적지 않다. 아시아 축구세력의 무게중심이 동아시아에서 중동으로 넘어간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 2014년 : ‘대권 징검다리’서울시장 낙선
FIFA 부회장 낙선 이후 국제 축구계에서 입지가 좁아진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때 ‘대권 징검다리’로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초 여권에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이길 가장 유력한 카드라는 평가를 받았던 만큼 기대도 컸다. 그러나 새누리당 경선 과정에서 막내아들이 SNS 상에 올린 ‘미개한 국민’발언이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이 같은 악재 속에서도 김황식 전 총리, 이혜훈 최고위원을 제치고 당내 후보 경선을 통과했지만 끝내 서울시장 자리를 꿰차진 못했다. 43.2%의 득표를 기록, 55.9%의 득표를 기록한 박원순 시장에 10%포인트 이상 뒤지며 정치적 내상을 입은 그는 한동안 정.재계는 물론 축구계에서도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 2016년 : ‘세계축구대통령’에 눈 돌린 이유는?
서울시장 낙선 후 잠잠했던 정 명예회장의 행보는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의 갑작스런 사퇴 선언 이후 빨라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FIFA 회장 선거 출마 여부를 신중히 생각해 판단하겠다”고 말한 그는 21일 출마를 공식화했다. 내년 4월 13일로 예정된 제20대 총선 종로 출마설이 돌았지만 FIFA 회장 도전이 더 매력적이란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축구계에선 최근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독일을 비롯해 뉴질랜드 20세 이하 월드컵 결승전, 캐나다 여자월드컵 결승전 현장을 찾아 국제 축구관계자와 교류하며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셸 플라티니(프랑스) 유럽축구연맹(UEFA)회장과 알리 빈 알 후세인 FIFA 부회장 등 만만찮은 후보들과의 대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당선됐을 경우는 물론이고 낙선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선전을 펼친다면 국내외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승산 높은 도박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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