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삼계탕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심지어 치킨집마저 주문이 폭주한다는 ‘그 날’. 오늘은 삼복 더위 중 가운에 낀 중복(中伏)이자 1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다.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삼계탕 한 그릇은 먹어줘야 이열치열로 복달임 잘 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날이다.
복달임이란 표현이 재미있다. 여름 기운 앞에 엎드린 가을 기운을 위해 먹는 음식이란다. 복(伏)은 ‘엎드릴 복’자이고 달임은 ‘오래 끓이다’는 순우리말이다. 그러니 복달임이라 하면 수박, 콩국수, 메밀국수 같은 찬 음식이나 국수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어구이나 오리구이 등의 구이류도 마찬가지다. 보양식이라고 해서 다 복달임은 아니다.
오래 끓여 먹는 복달임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역사서에 나오듯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팥죽이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에서 반가 음식으로 유명한, 애호박과 소고기를 넣어 끓인 민어탕이 있고 대구에서는 소고기와 파 흰 부분을 넣어 끓인 육개장을 꼽을 만하다. 붕장어를 고아 먹는 남해지방의 장어탕과 추어탕도 빼 놓을 수 없는 복달임 음식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복달임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개장국. 개장국은 역사서에서 일반 백성들도 1년에 한번은 먹었다고 전해진다. 나는 단고기(개고기) 요리를 먹지도, 요리하지도 않지만 위생적인 공간에서 키운 뒤 안전하게 도축한다면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서론이 길었다. 사실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삼계탕에 관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복달임 음식들은 문화와 전통이 스며있지만 삼계탕은 그렇지 않다. 박정배 음식 칼럼니스트는 ‘음식강산’이라는 책에서, 삼계탕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10년대 중추원 조사자료에라고 한다. 게다가 삼계탕은 개장국처럼 일반 백성들이 즐길 수 있었던 음식도 아니었다. 달걀 하나도 귀하던 빈궁했던 시절 백성들이 닭을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뿐더러, 나라에서 관리하며 전매하던 인삼을 넣어 끓인 탕을 여름마다 먹었을 리 만무하다. ‘음식강산’에 따르면 삼계탕은 197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서민들의 주머니 살림이 나아진 뒤에야 비로소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하지만 삼계탕 가게마다 걸려있는 ‘삼계탕의 효능’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라며 역사와 전통을 앞세우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전통음식 중 하나로 삼계탕을 꼽는다. 이건 왜곡이고 와전이다.
그렇다고 삼계탕을 평가절하 하는 건 아니다. 난 삼계탕을 무척 좋아한다. 가을이나 겨울에 술 약속을 할 땐 자주 가는 동네의 저렴한 삼계탕 집에서 퍽퍽한 닭 가슴살과 뜨끈한 국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하지만 복날 일부러 삼계탕을 찾진 않는다. 매일 필요 이상의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다 여름 하루 삼계탕 먹는다고 원기왕성해질 것 같지도 않다. 또 십전대보탕 마냥 한약재를 넣고, 전복 답지 않은 전복과 원산지를 알 수 없는 녹각까지 이것저것 넣어서 몇 만원대로 올라간 삼계탕 가격을 보면 더더욱 발길이 끌리지 않는다.
나는 그냥 보통 여름날처럼 일 끝나고 늦은 저녁 먹듯이 식사하는 게 좋다.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 밥상엔 두부와 방풍나물이 가득 들어간 된장찌개가 있고, 소금을 살짝 뿌려 구워낸 삼치와 현미밥이 있다.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선 시원한 수박이나 한 쪽 먹어야 겠다. 내겐 이런저런 복달임보다 더 안성맞춤인 여름 보양식이다.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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