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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엘리엇 이후, 삼성의 세 가지 숙제

입력
2015.07.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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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회계에만 의존한 합병 한계 노출

글로벌 삼성에겐 ‘애국’이 되레 부담

승계보다 먹거리 찾기에 더 집중해야

지난 7일 삼성전자 사옥 모습. 뉴시스
지난 7일 삼성전자 사옥 모습. 뉴시스

삼성으로선 엘리엇과의 대결은 플랜B가 없는 싸움이었다.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은 기본적으로 시너지 목적이 아니라 승계를 위한 매듭이었던 만큼, 무산은 절대 용납될 수 없었다. 10대0이든 1대0이든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거친 과정을 겪었지만 어쨌든 삼성은 져서는 안 되는 게임에서 승리를 따냈다. 이제 새 총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뿌리기업인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전체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것이다. 적어도 놀이공원(에버랜드)이 국내 최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이상한 모양새는 사라지게 됐고 거미줄 같던 순환출자구조도 단순해졌기 때문에, 이재용 시대의 소유지배구조는 이건희 회장 시절에 비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분명 의미 있는 합병이었다.

50여일에 걸친 공방과정에서 삼성은 투명성과 주주친화경영에 대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 귀담아 들을 얘기지만 삼성은 이 시점에서 승리 뒤에 감춰진 보다 근본적 문제를 고민해야만 한다. 대략 3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변호사와 회계사 중심의 승계작업이 갖는 한계다. 합병은 기본적으로 법률과 회계의 문제다.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가장 비용이 덜 드는 합병비율을 산출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삼성의 변호사와 회계사들은 최적의 답을 찾았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 1대0.35는 합법적으로 산출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에 가장 경제적인 답안이었다.

하지만 변호사와 회계사들은 여론의 향배와 역풍의 크기까지는 계산할 능력이 없다. 1대0.35에 대해 엘리엇이 그렇게 맹공을 펼 줄은, 여기에 외국인투자자와 일부 국내 소액주주까지 가세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작은 기업이라면 모를까 삼성의 승계라면 법과 회계 이외의 변수도 당연히 고려했어야 했다. 삼성은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때에도 비슷한 경험한 적이 있는데, 똑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고 말았다.

둘째는 ‘애국마케팅’이 가져올 후유증이다. 삼성 대 엘리엇의 합병비율공방은 싸움 중반부터 ‘국내 대표기업 대 외국투기자본’의 대결프레임으로 전환됐고,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삼성의 주주였다’는 얘기까지 나왔을 만큼 이 전략은 주효했다. 경영심리학적으론 분명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기본적으로 글로벌기업이다.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거의 전부(2014년 기준 92.6%)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전 세계시장을 상대하는 글로벌기업이라면 당연히 국적을 최대한 희석시켜야 하는데, 이번 게임에서 삼성은 ‘글로벌 삼성’이 아니라 ‘한국의 삼성’임이 너무 부각되고 말았다.

더구나 엘리엇과 대립이 과열양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제기된 유대인 논란(유대인인 엘리엇 창업주 폴 싱어를 셰익스피어 소설 ‘베니스의 상인’의 유대인 사채업자 샤일록에 비유한 것)은 절대로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이었다. 삼성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월스트리트 나아가 미국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건 긴 후유증을 남길 소지가 있다.

마지막은 삼성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길게는 최근 2~3년간 숨가쁘게 진행되어온 삼성 계열사간 통폐합과 사업구조재편, 짧게는 이번 합병홍역을 보면서 삼성이 승계에 너무 에너지를 쏟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재용 체제의 안착도 중요하지만, 사실 삼성의 더 큰 고민은 미래먹거리다. 삼성을 먹여 살리는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다. 그나마 디스플레이는 사실상 중국에 추월을 허용했고, 스마트폰은 정체상태에 빠져있다. 반도체 정도 확실한 1등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조차 언제 중국에 자리를 내줄지 모를 일이다. 이젠 3대 품목을 대체할 새 혁신제품과 기술이 나와야 하는데, 삼성이 승계에 집중한 최근 2~3년간 어떤 성장 동력을 찾았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삼성이 정말 걱정해야 할 것, 정말로 위기감을 느껴야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곡절도 많았지만 어쨌든 엘리엇과 싸움에선 이겼다. 이젠 좀 더 큰 싸움(시장경쟁)에 주력했으면 한다.

이성철 국차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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