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 & 한국인] 황산테러 희생자 어머니 박정숙씨

간호 매달리느라 초기대응 소홀 恨

생업 접고 16년간 범인 찾아나서

재수사 청원했지만 공소시효에 발목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위해 투쟁

서명해 준 30만명의 힘 결정적

대구 황산테러 사건으로 숨진 김태완군의 어머니 박정숙씨가 지난 해 7월 대구지검 앞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정숙씨 제공

“자식을 잃은 피해자 가족은 자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는데,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살인범은 길거리를 웃으며 활보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일명 ‘태완이법’이 국회 첫 관문인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태완군 어머니 박정숙(51)씨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국회 법안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기쁜 마음도 있지만 우리 태완이는 법 적용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태완군은 1999년 5월 20일 오전 황산테러로 중상을 입고 사투를 벌이다 49일만인 7월8일 오전 숨졌다. 박씨는 여섯 살배기 아들의 죽음도 서러웠지만, 어린 아들의 간호에 매달리다 초기 사건의 대응에 소홀했던 것이 한(恨)이 됐다.

“처음엔 잘 몰랐다. ‘그 사람(박씨는 자신이 범인으로 확신하는 인물을 이렇게 불렀다)’이 용의선상에 오른 뒤 경찰은 수 차례 조사했지만 결국 풀어주고 말았다.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 사람은 멀쩡히 거리를 활보한다니 견딜 수 없었다. 재수사를 청원했고,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니 알면 알수록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공소시효가 문제가 됐다.”

16년간 생업을 접고 범인을 찾아 나섰고,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투쟁’한 것도 무고한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 때문이었다. 박씨는 참혹한 모습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아들을 간호한 느낌과 소회를 기록한 ‘49일간의 아름다운 병상일지’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 글을 읽은 전국의 어머니들이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

살인죄 공소시효폐지 법안은 2012년에 발의됐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13년 황산테러 사건 재수사 청원과 함께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시민사회단체도 나섰다. 지역 법조인들도 힘을 보탰다. 박씨도 법원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통해 의지를 보였다. 박씨는 “무엇보다 재수사청원과 공소시효폐지운동에 서명한 30만명의 힘이 결정적이었다”며 “지난달 26일 대법원에서 재정신청이 기각된 뒤 법안을 발의한 서영교 의원에게 ‘우리 아이는 이제 어쩔 수 없지만 태완이법이라도 통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당시 일부 시민들은 직접 서명을 받은 뒤 서명지를 모아 우편으로 박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 동안 박씨 가족의 삶은 엉망이 됐다. “하루 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다. 공소시효 폐지로 이 땅의 가해자들이 더 이상 웃고 다니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말은 하지만, 실제 마음은 다르다. 요즘은 멍한 상태다.” 지난달 30일, 재정신청 기각 결정문을 받아보고 부들부들 떨다 정신이 혼미해져 휴대폰을 깨뜨리기도 했다고 한다.

사건 이후 대구 동구 효목동에 살던 박씨 가족은 2013년 여름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얼굴이 너무 알려져 사는 게 불편해서였다. 박씨는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그 동안 생계는 어떻게 했냐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간다. 채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자식을 그렇게 처참하게 보냈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 우리의 목표는 생계가 아니라 태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연이긴 하지만 이사한 동네에서 ‘그 사람’과 마주치기도 했단다. 범인은 그 사람이 아니고, 자칫 생사람을 잡는 일일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알면 알수록 범인은 그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건발생 100일도 넘어 실시한 국과수 분석에서 아이의 옷에 묻은 황산이 다시 묻었다는 운동화에서 5만ppm의 고농도 황산이 어떻게 나왔겠나. 황산은 2차 접촉으로 그렇게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런 핵심은 빠뜨린 채 보험가입 유무 등 엉뚱한 것만 자꾸 물어 보더라.”

박씨는 “우리나라의 법은 너무 가해자 인권에만 강조돼, 피해자 인권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법 제정에 이 사회가 보다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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