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의 연속이었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는 패퇴를 거듭했다. 내놓는 영화마다 관객들이 외면했다. 한국영화의 부진은 할리우드 영화들에게 기회였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등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주고받았다.
시장만 잃은 게 아니었다. 돋보이는 영화적 성취도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감독의 작가적 욕심이 지나치거나 감독의 색깔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영화 위기론이 고개를 들만한 상반기였다.
상반기 막판에 충무로의 반격이 시작됐다. 완성도와 상업적 매력을 갖춘 영화들이 잇달아 선보였다. ‘극비수사’(감독 곽경택)와 ‘소수의견’(감독 김성제), ‘나의 절친 악당들’(감독 임상수),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무뢰한’ (감독 오승욱) 등이 갈증을 해소시켰다. 기자와 영화평론가 사이에서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22일 개봉한 ‘암살’(감독 최동훈)과 내달 5일 선보이는 ‘베테랑’(감독 류승완)은 한국영화의 흥행 부진을 만회할 만하다.
한국영화의 반격을 주도하는 감독 대부분은 데뷔 10년이 넘은 중견이다. 곽경택 감독은 1997년, 임상수 감독은 98년, 류승완 감독은 2000년, 최동훈 감독은 2004년 각각 첫 장편영화를 내놓았다. 이들의 최신작을 보면 감독의 역량이 영화의 완성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중견 감독들의 활약 덕분에 충무로가 기력을 되찾았다고 하나 씁쓸함도 진하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신진 감독들이 그리 돋보이지 않아서다. 2013년만 해도 신예의 활약이 빛났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와 ‘신세계’(감독 박훈정),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 ‘숨바꼭질’(감독 허정) 등이 신세대 감독군의 등장을 알렸다. 그러나 2년 사이 충무로에서 패기가 사라졌다.
얼마 전 만난 어느 감독은 한국 영화시장의 현실에 분노 어린 절망감을 표했다.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 예상보다 관객과 많이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격정을 토로했다. 국내 투자를 받을 수 없고 국내 관객들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해외 자본과 해외 관객들에 의지하는 ‘산업적 망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도 했다.
돌이켜보면 2010년대 독립영화계는 양익준 박정범 민용근 윤성현 등 꽤 많은 스타 감독들을 배출했다. 상업영화 진영으로의 진입이 기대되는 인재도 많았다. 하지만 제도권으로 들어와 재능을 꽃피운 별들은 매우 적다. 새로운 인재 유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시장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요즘 충무로는 몸통은 커지고 머리는 빈약해지는 모양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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