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판 미스코리아' 쿨가이 선발대회, 지원자 매년 늘어 올해 1675명
"외모 가꾸기는 남녀문제 아냐,
몸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과 삶에 대한 태도 알게 돼"
하느님이 진흙으로 최초의 인간 아담을 빚은 이래, ‘만들다’라는 동사의 목적어로 ‘몸’을 사용할 수 있는 주어는 신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만든다. 지금 가진 이 몸은 마치 몸이 아니라는 듯, 들고 당기며 몸 이곳 저곳을 키우고 다진다. 거울 속 몸을 들여다볼 때마다 가슴 속에 번지는 긍지와 보람은 이를테면 신적 체험과 유사한 것일 터.
남녀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몸의 정의가 “부모님 덕분”에서 ‘자수성가’의 몸으로 변모한 시대. ‘웰메이드 보디’는 유전자의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도전인 동시에 성실성과 의지력의 척도이자, 삶의 형태와 계급에 대한 단서이기도 하다. 외모지상주의와 상업주의의 책략이 남성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오늘날, 남성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남성의 미
18일 토요일 서울 남산창작센터.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23일 개최되는 ‘제10회 쿨가이 선발대회’ 리허설이 한창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맹더위 속에서 웃통을 벗어 젖힌 스물 다섯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워킹과 포즈 연습에 골몰하고 있다.
‘지덕체를 모두 갖춘 대한민국 대표 남성’을 표방하는 쿨가이는 디자인하우스가 발행하는 남성 건강 잡지 ‘맨즈 헬스’가 주최하는 ‘남성판 미스코리아’다. 근육질의 몸매를 주요 평가 대상으로 삼는 보디빌더 대회나 미스터코리아 대회 등과 달리 직장인이나 학생 등 ‘보통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지성미와 야성미, 교양과 외모를 평가한다.
지난 10년간 이 대회에 응모한 남성들의 숫자와 면면을 보면 ‘미’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이 얼마나 급격히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2007년 313명이 지원했던 쿨가이 선발대회는 참가자가 매년 급증, 2010년 1,000명을 돌파(1,211명)한 데 이어 대회 10년째인 올해 1,675명에 이르렀다. 본선 경쟁률 64 대 1. 대회 초기에는 헬스 트레이너 등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던 남성들이 중심이었지만 올해는 응모자의 54%가 직장인, 그 중 23%가 삼성전자, LG그룹 등 대기업 재직자였다. 의사, 기업 CEO, 디자이너, 아티스트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전체 응모자의 20%나 차지했다. 1차 서류 평가와 2차 면접을 거쳐 선발된 25명의 본선 진출자들은 23일 대회에서 육체미 겨루기, 1분 자기소개, 스타일 겨루기, 축하 댄스 등의 심사를 거쳐 최종 우승자를 가리게 된다. 우승자가 된다고 해서 특별히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좋은 추억’이 될 뿐이다.
참가기준은 딱히 없다. 그래서 참가자들의 나이, 직업, 키, 체중 모두 천차만별이다. 본선 진출자 대부분이 20대 중ㆍ후반과 30대 초반의 남성들이지만, 50대도 한 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신장은 176~189㎝에 분포했으나 180㎝ 이상이 22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체중은 67~89㎏ 사이였다.
“몸이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진다”
한때 ‘그루밍족’이라고 불렸던 외모 가꾸는 남성들은 미의 치외법권에 존재하던 남성 일반의 예외적 소수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 남성들에게 이제 그루밍은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행태라는 게 쿨가이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가톨릭중앙의료원 기획팀에 근무하는 성동효(32)씨는 “쿨가이는 요즘 남성들이 외모 가꾸기를 중시하는 세태 전반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대회”라고 말한다.
사춘기 시절 폭력성향과 분노조절장애로 심리치료를 받았던 성씨는 치료의 일환으로 다른 사람과 섞이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추천 받았다. 중3 때 시작한 웨이트를 통해 자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체력이 방전돼 “누가 뭐라 해도 때릴 힘이 없는 상태”가 되면서 성격이 활발해졌다. 공부에도 재미가 붙어 연세대 보건행정학과에 들어갔다고.
아내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살 딸 아이에게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를 남겨주기 위해 쿨가이에 도전했다는 성씨는 “참가자 중 상당수가 왕따를 당했다거나 자살충동에 시달렸거나 해외생활에서 상처를 받았거나 하는 시련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며 “상처 때문에 운동에 입문해 자신감을 키웠고,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멋에도 눈 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멋을 부리는 남자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편견이 여전하지만, 성씨는 “남자도 멋을 내야 한다”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 “멋이라는 건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한 사람이어야 부릴 수 있는 거니까요. 사람의 이미지가 3초 안에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잖아요. 못생긴 사람도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찾기만 하면 얼마든지 멋질 수 있어요.” 가을색이 잘 어울린다는 전문가의 컬러진단 결과에 따라, 성씨는 카키, 브라운, 베이지 등의 색깔을 주로 입는다.
공중보건의인 이재민(32ㆍ안덕보건지소장)씨는 쿨가이 선발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지 벌써 7년째다. “멸치처럼 삐쩍 마른 체형이 극도의 컴플렉스”였던 이씨는 그 좋다는 20대 초반까지 연애 한번 못해본 신세였다가 운동으로 근육이 붙으면서 “연애가 술술 잘 풀리는” 기적을 체험했다. “아, 이거구나 싶었죠.(웃음) 저처럼 마른 남자분들을 보면 두 손을 꼭 잡고 운동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세상이 달라진다고요.” 이씨는 “건강이나 다이어트 얘기를 많이 하는 의사들이 막상 마주하면 건강한 몸이 아니라 신뢰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저는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를 통해 운동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 대회에 출전했다”고 말했다.
“내 인생이 몸에서 드러난다”
육군 장교인 심정우(31ㆍ중대장) 대위는 사복 차림으로 있을 때는 그 직업을 짐작하기 힘든 의외의 참가자다. 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제고하고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며 국방부를 설득하고 나온 그는 “한국 군인만큼 국민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군인도 없는 것 같다”며 “군인도 얼마든지 트렌디하고 사회 일원으로서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출전했다. 군인들은 전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근지구력과 지구력 향상 운동을 주로 하지만, 그는 “배 나오고 오래 달리기 잘하는 군인보다는 다부진 체격에 자기 관리 잘하는 인상의 군인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웨이트에 주력해왔다. 군 생활 7년째인 심 대위의 변화하는 몸을 보며 부대 내에서는 상하 지위를 막론하고 웨이트 붐이 일 정도였다고. 남자가, 그것도 군인이 왜 그렇게 외모에 신경을 쓰냐고 묻자 심 대위는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고 답했다. “외모라는 건 반지르르하게 잘 꾸민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보여지는 자기 표현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은 우리들 대부분을 불쾌하게 한다. 남자들도 외모를 평가하는 여자들의 시선이 불쾌하다. 하지만 쿨가이들은 그런 시선을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커뮤니티운영위탁회사 GCM에 팀장으로 재직 중인 백승현(31)씨는 멋을 “한 사람이 살아온 경험과 삶에 대한 애티튜드”라고 정의했다. “남자도 자기관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쿨가이 선발대회고요.”
참가자 대부분은 주변으로부터 “멋지다, 잘해봐라”와 “뭐 하는 짓이냐”의 상반된 반응을 접했다. 미디어가 전시하는 비현실적인 몸에 반대하며 시선의 폭력을 거부하는 것은 옳다. 세상에 비난 받아 마땅한 몸이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칭찬받아야 할 몸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장윤정 인턴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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