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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서 밤새 일해도 월 120만원 말이 되나" 노동착취 파수꾼으로

입력
2015.07.2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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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600여 건 노동사건 담당

영세업체 근로자ㆍ비정규직 등

법적 권리 찾아주기 험난한 씨름

15일 서울 구로동 사무실에서 만난 최미숙 노무사는 "최저임금은 개인적인 능력과 별개로 근로자가 성실히 일하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약속"이라며 "자기 노동으로 자립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이 시혜적 복지보다 훨씬 생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15일 서울 구로동 사무실에서 만난 최미숙 노무사는 "최저임금은 개인적인 능력과 별개로 근로자가 성실히 일하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약속"이라며 "자기 노동으로 자립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이 시혜적 복지보다 훨씬 생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 일수록 1960~70년대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익숙해져 있어 최저임금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반값 임금’같은 적폐가 사라져야 해요.”

지난 16일 서울 구로동 노무사 사무실에서 만난 최미숙(52) 노무사는 최근 자신이 담당했던 ‘반값 월급’ 사건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울 관악구의 한 24시간 목욕탕에서 야간 매표원으로 일하며 월 120만원을 받았던 A(64)씨가 2013년 최씨를 찾아왔다. A씨의 월급은 오후 7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5시30분까지 매일 10시간씩, 한 달에 하루만 쉬며 받은 돈이었다. 고령 여성인 A씨는 자신의 노동으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최저임금도 안 된다”는 아들의 말에 최씨를 찾은 것이었다.

(관련 인터랙티브 기사 ▶ 우리들의 일그러진 월급통장)

최씨는 최저임금을 적용해 A씨 급여를 다시 계산했다. 주중(월~금) 하루 8시간인 법정근로시간에는 최저임금, 연장ㆍ야간ㆍ휴일ㆍ휴일연장 근로시간에는 최저임금의 1.5~2배의 수당을 적용하자 A씨가 받아야 할 임금은 260만원이었다. 그는 ‘반값 월급’을 받으며 2012년10월부터 11개월 간 일해온 것이었다. 그가 받지 못한 임금은 1,360만원이나 됐다.

하지만 법적 권리를 찾는 과정은 험난했다. 임금 체불로 진정하기 위해 지방노동청에 갔으나 근로감독관은 “이런 사건 자주 해봐서 안다, 200만~300만원이면 되지 않냐”며 합의를 종용했고, 이를 거부하자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다. 최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의 반말 등 인권침해와 부실한 조사에 대해 노동청 감사관실에 민원을 제기했고, 재조사 결정이 났다. 하지만 재조사에서도 무혐의 처리돼 최 노무사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일정액을 주기로 한 ‘포괄임금제’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기각했다. 그러나 최 노무사는 “포괄임금제로 계약했다 해도, 근로기준법이 무시됐으므로 무효”라며 A씨의 항소를 도왔고, 법원은 지난 5월 말 “A씨에게 체불 임금 1,36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년 반 동안 매달려온 사건이 드디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최씨는 “수임료가 많은 사건보다 이렇게 엎치락 뒤치락하며 고생한 사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며 웃었다. 지난 2003년 옛 ‘구로공단’ 근처에 터를 잡은 최씨는 지금까지 600여건의 노동 사건을 담당했다. 지역 특성상 대부분 영세업체 근로자나 비정규직 등이 많이 찾아오지만, 대기업이나 공공기업 근로자들도 그를 찾는다. 노동 환경에 따른 차이는 극명하다. 최씨는 “괜찮은 일자리의 근로자들은 부당 징계나 성희롱 등 노동자의 권리와 관련된 상담을 많이 하지만, 열악한 일자리의 근로자들은 산업재해, 임금 체불 등 1960,70년대 수준의 노동문제로 사무실을 찾는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의 60년대’에 살고 있다. 최씨는 2011년 2년 간 밀린 임금 3,500여 만원을 받지 못해 주인이 잠적한 식당 바닥에서 추운 겨울을 난 인도인 요리사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요리사의 남동생이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해 또 최씨를 찾아왔다. 외국인 형제의 사건에서 한국의 부끄러운 노동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노무사가 된 최씨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1982년 서울대 철학계열로 입학해 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을 한 학기 앞둔 85년 반정부 집회에 나갔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결혼 후 두 자녀를 낳고 나서야 대학을 졸업했지만,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생계 방편을 찾던 중 노무사를 선택했다. 최씨는 “사회 현실에 발 딛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던 중 취약계층의 권리를 구제하면서 먹고 살수도 있다는 생각에 노무사가 됐다”고 말했다.

최씨는 복지 사각지대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송파 세모녀’도 노동 문제로 바라봤다. 최씨는 “송파 세모녀의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월 120만원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일한 만큼 200만~300만원 수준의 월급을 보장받았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씨는 반문했다. “근로자들이 일한 만큼 제 몫을 줘 살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공정함이고 경제민주화가 아닐까요.”

글ㆍ사진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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