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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누가 마라톤을 하려 할까

입력
2015.07.2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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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케냐 출신 선수가 한국 마라톤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그의 이름은 월슨 로야나에 에루페. 올해 스물일곱 살이다. 그는 최근 충남 청양군청 소속 선수로 입단한 뒤, 한국 귀화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 성(姓)과 이름은 오주한(吳走韓).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다. 성은 후견인에게서 따왔다. 후견인에 따르면 에루페의 최종목적은 태극마크를 달고 내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는 것이다.

에루페는 올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6분11초로 우승하는 등 국내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이미 네 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 이외의 국제대회에선 우승 경력이 전무하다. 당연히 케냐 대표 경력도 없다. 그럴 만도 하다. 에루페의 최고기록은 2012년 국내 대회에서 세운 2시간 5분37초에 불과하다. 에루페 스스로도 “내가 케냐 대표가 될 가능성은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케냐에서 2시간 5분대 마라토너는 ‘널려’ 있기 때문이다. 운이 없어서 일까. 그는 2013년 1월 국제육상연맹의 도핑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여 2년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는 올해 1월에서야 풀렸다. 그리고 곧장 한국으로 날아와 우승했다. 사실 2시간 6분대면 국내대회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다. 앞으로도 에루페의 독주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육상계 안팎에서는 에루페의 국가대표 선발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세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했던 함기용 옹은 “마라톤을 팔아먹는 매국노와 같은 발상”이라고 일갈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36년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제패 등 민족혼이 깃든 마라톤에 감히….’라는 핏줄 섞인 반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한국 마라톤은 케냐와 에티오피아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세에 게임이 되지 않는다. 과학마라톤의 선두주자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발 ‘검은 폭풍’은 10여년 전부터 보스턴, 런던, 베를린 등 세계 메이저 마라톤대회를 석권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마라톤의 침체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한국 최고기록은 2000년 이봉주가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다.

에루페의 대표선발에 찬성하는 이들은 한국마라톤의 뒷걸음질을 꼬집는다. 그러면서 ‘메기효과’를 입에 올린다. 메기(에루페)가 들어와야 다른 물고기(국내 선수)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는 국내 선수를 모욕하는 발언이라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나라다. 메달만 놓고 보면 일본과 중국이 더 간절하다. 하지만 그들이 선수를 보는 안목과 돈이 없어서 아프리카 선수를 귀화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육상경기연맹의 모호한 태도다. 항간에는 육상연맹이 에루페에게 태극마크를 달아주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답보상태인 한국 마라톤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용병수입’식은 해법이 아니다. 한국 마라톤에 희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육상연맹은 후진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책무가 있다. 황영조의 올림픽 금메달과 보스턴 챔피언 이봉주의 영광도 손기정, 함기용 쾌거 이후 5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삼성전자 출신인 오동진 육상연맹 회장은 취임 후 유소년 대상 ‘키즈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면서 “1970년대 세계 가전시장에서 일본 소니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다. 죽었으면 죽었지 우리가 못 따라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부딪치고 깨지며 나아가다 보니 삼성전자가 세계 1위가 됐다. 한국 육상이라고 못할 게 뭔가. 나는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랬던 오 회장이 꿈나무 육성대신 가장 손쉬운 외국인 귀화후 대표선발에 귀를 기울인다면 명백한 자기 부정이 아닌가.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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