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빈 양주케이스에다 모아둔 지 꽤 된다. 단골 술집에서 얻어온 것들인데, 서너 개 정도 가지고 있다. 가끔 생각나면 무게를 재보곤 한다. 어떤 건 가볍고 어떤 건 꽤 무겁다. 주로 백 원짜리가 많지만, 가끔 쏟아보면 오백 원짜리나, 어디서 굴러들어온 건지 알 수 없는 엔화나 유로화 등도 종종 눈에 띈다.
한번은 놀러온 친구와 액수를 맞추는 게임을 한 적 있다. 개중 제일 가벼운 것으로 골라 머릿속으로 셈해 보았다. 양주케이스를 집에 가져 온 시기와 동전을 투입하는 빈도 등 여러모로 집주인인 내가 정보에선 유리했지만, 장담하긴 힘들었다. 친구가 먼저 액수를 불렀다. 왠지 대충 근접한 액수인 것 같았다. 잠깐 뜸을 들였다가 내가 액수를 불렀다. 그러곤 뚜껑을 열어 동전을 쏟았다. 100원짜리 500원짜리 별로 나누고 외화는 제외하고 10원짜리를 맨 마지막에 세었다. 마지막 동전이 다시 통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연했다. 내가 부른 액수에서 딱 십 원이 남는 금액이었다. 친구도 나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연이라 해도 지나치게 섬뜩했다.
그러곤 석 달여가 지났다. 그때 내가 얼마를 불렀는지 기억에 새겨 두진 않았지만, 동전 하나 차이로 맞아떨어질 때의 그 ‘경이’는 잊지 못한다. 문득, 오늘 점심은 그 동전을 털어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좀 번거롭더라도 꼭 받아주세요. 나름 영험한 동전들이니까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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