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에게 스포츠의학이라는 단어는 제법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 의학이 치료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매우 모호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프로선수만을 치료하는 것인지, 동호회 스포츠를 하다가 다친 일반인들도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무릎이나 어깨를 치료하면 모두 스포츠 의학인지 매우 헛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신문과 TV에는 '스포츠의학'이라는 용어가 넘쳐나고 있고 여러 병·의원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면 모두가 스포츠 의학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결국은 일반인과 의사들까지도 무릎이나 어깨 관절을 치료하면 누구나 두루뭉술하게 '스포츠 의사'라고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스포츠의학과 그냥 의학의 차이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나는 이 칼럼을 통하여 많은 스포츠의학의 이야기들을 쓸 예정이다. 그런데 만약 스포츠의학이라는 용어를 정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모든 이야기들도 모호해질 것이다. 때문에 첫날인 오늘은 스포츠의학이 무엇인지를 써보고자 한다.
현재 국내에서 스포츠의학이라는 단어는 퇴행성변화를 치료하는 의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예컨대 필자가 전문으로 하고 있는 어깨분야에서 어깨가 탈구되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10대~20대인데 이 때는 아직 퇴행성 변화가 생기지 않는 시기이다. 때문에 어깨 탈구에 대한 수술과 치료를 스포츠의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필자는 스포츠와 관련 없는 외상성탈구는 '외상학'의 한 분야이지 스포츠의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어깨 재발성 탈구가 발생하여 수술을 하게 된 야구선수와 일반인이 있다면, 필자는 이 2명에게는 다른 내용의 수술을 하게 된다.
일반인의 경우는 재탈구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모든 수술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수술 후 관절범위도 정상으로 나오고 운동을 할 수도 있지만, 프로선수가 투구하는 것 만큼의 어깨 유연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수술의 내용 자체가 재발률을 0%로 수렴하는 방향에 맞추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구 선수라면 어떻게 수술하게 될까?
위 그림처럼 프로 투수 어깨의 외회전은 일반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준의 각도를 보여준다. 좋은 투수일수록 유연성이 뛰어나며 그런 만큼 투구 동작에서 어깨는 뒤로 더 많이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어깨가 유연하면 유연할수록 탈구의 위험성이 올라가는 것 또한 당연한 의학적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구 선수의 수술은 '유연성'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맞추게 된다. 그렇다고 수술 후 재탈구가 일어나지는 않지만, 약간의 아탈구(불완전탈구)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라도 유연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엘리트 스포츠의학'에서는 완전히 같은 질환에 대해 수술을 하더라도 그 방법과 방향은 전혀 다른 치료법을 사용한다.
실제로 일반인과 전문 선수의 치료에는 수술 방법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근원적인 치료법 자체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일 손상에 있어 일반인은 수술로 치료해야 하지만 선수는 수술해서는 안되는 경우가 존재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또한 선수의 종목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가령 야구선수와 양궁선수가 똑같이 인대가 손상되는 팔꿈치 질환을 겪는다 하더라도 야구 선수는 수술을 해야 복귀가 빠르고 쉽지만 양궁선수는 수술하지 않는 것이 더 빠르고 완벽한 복귀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경우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스포츠의학이 전적으로 스포츠를 잘 할 수 있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따금씩 일반의학과 스포츠의학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올 때도 있다.
필자의 외래에는 프로선수 뿐 아니라, 사회인 야구선수들도 많이 찾아온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회인 야구선수가 있다.
그는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진단 결과 내측측부인대 파열이었다. 흔히 알려진 '토미존스 수술'이 필요한 손상이지만 본래 일반인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치료는 수술이 아니다. 투수가 아닌 야수나 지명타자로 보직을 변경하여 재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일반인 수준에서는 충분히 통증을 없애면서 즐겁게 사회인 야구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상담 결과 이 환자는 사회인 야구팀의 에이스로 활동하며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있던 상황이었다. 대학까지 야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프로문턱에서 좌절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필자에게 '야구는 자신의 인생'이라고 표현하면서 '투수'로서 마운드에 서는 것이 얼마나 본인에게 중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비록 일반인과 선수의 치료를 엄격히 구분하는 필자의 원칙에는 어긋났지만 환자의 강한 의지에 감동 받은 필자는 프로선수 또는 프로를 지망하는 선수들에게만 시행하는 '토미존스 수술'을 해주었다. 다행히 그 환자는 9달 만에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었고 인생 최고의 공을 던지며 팀을 2부리그의 상위권에 유지시키고 있다고 전해왔다. 이런 경우는 엘리트스포츠학과 일반의학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는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다.
본래 스포츠 의학은 선진국의 주요 프로팀들을 담당하는 스포츠닥터들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알아낸 지식들이고 소수의 의사들만이 경험할 수 밖에 없는 학문이다. 그러다보니 '스포츠의학'이라는 것이 국내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관절전문의들은 가지기 힘든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프로선수들이 수술 후 복귀하지 못하고 평생 재활에만 매달리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스포츠 의학'은 최단 시간에 '최고'의 기량을 만들어내는 학문이지 시간을 끌면서 몇 년씩 재활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특정 선수에게 가장 빠르고 높이 갈 수 있는 길을 찾고 결정해주는 것이 스포츠 닥터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스포츠의학은 스포츠를 잘 하기 위해 어느 시간대에 운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어느 시점에서 수술을 해야 하는지까지도 결정해야하는 광범위한 학문이다.
다음부터는 필자가 겪었던 재밌는 환자들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면서 스포츠의학을 하나씩 쉽게 풀어가 보고자 한다.
이상훈 원장
미국 뉴욕컬럼비아대학병원(뉴욕양키스구단 지정병원) 전임의 수료
(현)CM충무병원장
(현)NC다이노스 수석팀닥터
(현)기아타이거즈 수석팀닥터
(현)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닥터
김재웅 기자 jukoas@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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