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례연습 500번ㆍ기수 열외 당해
인권위 조사… "전출 요구도 묵살"
가혹행위를 신고한 해병대 병사가 부대 전출 요구를 묵살당한 채 보복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져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위 파악에 나섰다.
20일 인권위와 피해 병사의 가족에 따르면 5월 해병대 모 부대에 배치된 A(20) 일병은 며칠 뒤 동료 두 명과 함께 선임병 3명으로부터 철모로 머리를 얻어맞는 등 구타를 당했다. 모멸감을 느낀 그는 부대 민간인 상담사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놨고, 가해 병사들은 다른 부대로 전출 조치됐다. 하지만 정착 전출은 원했던 A 일병이 부대에 남게 되면서 그는 밀고자로 낙인 찍혔다. 계속된 폭언과 ‘기수 열외’ 등 괴롭힘에 지친 그는 한달 뒤 부대 생활관 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했다.
A 일병 가족은 전출 요구를 부대가 묵살한 탓에 부대원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것이 자살 시도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족들에 따르면 선임병들은 A 일병이 자는 침상을 발로 차는가 하면 샤워실에서 알몸 상태로 세워두고 폭언도 했다. 선임병들에게 경례 연습을 500번 이상 시키는 괴롭힘도 이어졌다. 후임병인 이병들이 A 일병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는 이른바 기수열외도 있었다.
해당 부대는 이런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A 일병이 투신한 뒤에야 부랴부랴 함께 구타를 당한 다른 피해자 한 명을 타부대로 전출했다. 이 과정에서 부대 간부들의 부적절한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간부 B씨는 투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에게 “A 일병이 ‘내가 선임병을 쓰러뜨릴 수 있다’ 는 발언을 해 A 일병에게도 ‘그런 발언을 했기 때문에 (가혹행위 등) 문제는 네가 안고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해병대 관계자는 “부대가 피해 병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며 “가혹행위 내용은 아직 사실 여부가 드러나지 않아 헌병대 등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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