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동물원에 갔다. 날씨는 흐렸다. 처음 만난 건 기린. 길고 알록달록하고 느릿느릿한, 커다란 생물. 일상과는 다른 크기와 속도 탓이었을까. 왠지 그 기다란 생물이 헛것 같았다. 손을 대면 아무 질감 없이 그저 텅 빈 공기만 만져지는 홀로그램 같은 것. 이후, 동물원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게 다가왔다. 햇볕을 피해 나른하게 널브러져 있는 호랑이나 표범도, 코로 물을 퍼 올려 등목 하는 코끼리도, 새장 속의 잉꼬와 앵무새 따위도 그 명백하고 분명한 색감이나 크기에도 불구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나 조각상 같았다. 왠지 마음이 우울해졌다. 그러다가 돌고래 쇼를 봤다. 시각이 시각인 만큼 관람객은 적었다. 돌고래가 재주를 한번 넘을 때마다 조련사가 물고기를 던져줬다. 그걸 보다가 문득, 눈시울이 따가워졌다. 갇혀있다는 공포나 답답함이 동물들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갇혀있는 상태에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많은 행동이나 생각들에 짓눌려 내가 지금 여기 앉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각이 뒤따랐다. 돌고래 쇼장을 나왔다. 빗방울이 흩날렸다. 다리를 재게 놀려 동물원을 빠져 나오려 했다. 빗방울이 빠르게 굵어졌다. 거의 전속력으로 달려 출구에 도착했다. 어느 허망한 낮 꿈 속에서 울다 나온 기분. 동물원을 나오자 비가 그쳤다. 하늘을 봤다. 먹구름 장막이 거대한 우리의 천장 같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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