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쟁이 아름답고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쇼미더머니4(m.net)’의 싸이퍼 미션이 끝나고 참가자 자메스가 특별 심사위원 스눕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한시간 안에 돌아가면서 랩을 해야 하는 미션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마이크를 뺏기 위해 그야말로 이전투구를 했다. 랩 실력을 가리는 것인지 완력을 가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수라장.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그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던 실력자(서출구)는 탈락했다.
그러나 스눕독의 대답은 뻔했다. 어차피 정해진 룰이라면, 거기에 따라야만 합격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쇼미더머니4’는 여성비하 가사 논란, 악마의 편집 등 방송 때마다 수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방송된 싸이퍼 미션 장면은 뭐랄까, 너무나 적나라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비유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뒷맛이 찝찌름했다. ‘네가 지금 회사에서 겪고, 보고 있는 사회생활이 딱 이렇지 않니? 그걸 그대로 표현한 건데 우리가 뭐가 그렇게 문제니?’라고 노골적으로 묻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정리해 봤다. 최고의 랩퍼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보면서, 왜 랩과 전혀 상관 없는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사회생활이 오버랩 되는지.
① 꼭 실력자들이 출세하는 건 아니다
실력 있는 놈들은 처음부터 튄다. 회사생활을 10년 정도 해 보면 대충 보인다. 노력 같은 건 사실 별 변수가 되지 않고, 원래 일 잘 하는 놈들은 입사할 때부터 잘 한다.
그런데 그 뛰어난 인재들이 반드시 승진하고 출세하느냐 하면 그건 꼭 그렇진 않다.
‘쇼미더머니4’의 스눕독이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룰을 정했으면, 그 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의 룰은 반드시 일을 열심히 잘 하는 것에만 있진 않다. 일을 잘 하는 것보다도 때론 윗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 아랫사람들 챙기는 것보다 윗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챙겨야 한다. 묵묵히 일하는 것보다 내가 얼마나 능력자인지 뻥튀기하고 생색내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느낀 ‘대한민국 사회생활의 룰’을 좀 과장 보태서 말하자면 이러했다.
‘쇼미더머니4’ 초반 예선에서 탈락한 피타입을 보자.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적인 랩퍼지만, 방송의 무게는 그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지나치게 긴장했는지, 결국 가사를 두 차례나 버벅대는 실수를 해서 충격의 탈락을 한다. 피타입이 탈락했다고 해서 그가 실력이 떨어진다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룰에 따라서 그는 ‘출세(이 프로그램 안에서 살아남는 걸 단적으로 출세에 비유하자면)’에는 실패했다.
프리스타일 랩의 최강자 서출구는 싸이퍼 미션에서 탈락했다. 마지막에 고교생 참가자와 둘이 남았는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마이크를 양보했다. 그는 방송이 나간 후 SNS에 “양보한 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하기 싫었기 때문”이라며 “난 ‘쇼미더머니’의 결론도 아니고, 내 결론도 ‘쇼미더머니’가 아니다”라고 했다.
서출구를 보면서 ‘미생’의 오상식 차장을 떠올렸다면 오버일까. 자기 발로 떠나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멋지다’라는 찬사, 혹은 ‘왜 버티지 못하고 바보 짓을 할까 쯧쯧’ 하는 연민. 뭐, 그래도 서출구씨가 월급 나오는 회사를 박차고 떠난 건 아니니까. 프로그램 이용해서 자기를 알릴 만큼 알리고 정의의 아이콘이 된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그리고 만일 이 공식이 그대로 끝까지 적용된다면, 베이식이나 릴보이, 마이크로닷 같은 실력자들이 결국 최종 우승자가 될 확률은 그닥 높지 않다는 뜻도 된다. 현실 세계의 룰은, 진짜 순수한 실력만 갖고 승자를 가리는 건 아니니까. 블랙넛이 예선에서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했을 때 왜 심사위원들이 빵 터졌을까. 모두들 입밖에 내진 않아도, 우리가 몸으로 겪었던 룰은 그런 거라는 걸 웃음으로 인정한 것 아니었을까.
② 부장님-상무님? 아니, 진짜 힘은 저 위에 있다
가끔 부장님과 사원들의 갑을 관계가 바뀌기도 한다. 일반 기업 중 간혹 연말 직원평가에서 부서장이 직원들을 평가하는 것 외에 부서원들이 부장을 평가하는 항목도 있는 곳이 있다. 나도 이런 식의 평가를 하는 회사에 잠시 다녔던 경험이 있다. 이때 아주 잠깐, 사원들은 부장을 평가하는 ‘갑’이 되어 본다.
‘쇼미더머니4’에서도 심사위원들이 긴장 속에 공연을 하고, 참가자들의 평가를 받는 코너가 있다. 참가자들은 “갑을 관계가 바뀌었을 때 어디 한 번 보자”며 신난 표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결국 24표 중 18표라는 압도적인 득표수로 1위를 차지한 지코-팔로알토 팀이 1위의 권한으로 4명의 참가자를 자신들의 팀으로 선점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 릴보이, 한해, 슈퍼비가 연달아 지코-팔로알토에 거부권을 행사한다. 또 한 번 제대로 갑-을이 뒤바뀌는 상황. 그러나 뭐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참가자들은 순수하게 공연만 봤을 땐 지코-팔로알토에게 환호했지만, 정작 자기들이 ‘클 수 있는’ 심사위원들을 찾을 땐 냉정해지는 것 아닌가. 뒤바뀌는 갑-을 관계보다 더 무섭고 적나라한 건, 어쩌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공연에서 딱 1표를 받아 꼴찌를 했던 YG(타블로-지누션) 팀은 공연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게 나왔을 뿐, 저 회사(이 프로그램 심사위원 팀 중 유일한 메이저 기획사)에 가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욕망은 공연 실력과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또 다른 엉뚱한 생각 한 가지 더. 결국 부장님-상무님이 우리 눈앞에서 아무리 거대한 산 같고 대단해 보여도, 결국 그 사람들도 더 큰 권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쇼미더머니4’의 진짜 권력자는 제작진이다. 박재범이 심사위원팀들의 공연 장면 방송을 본 후 “편집을 이렇게 하는구나. 우리 랩 하는 모습은 안 나오고. 너무하시네”라고 SNS에 올린 것만 봐도 그렇다. 제작진이 휘두르는 ‘악마의 편집’, ‘통편집’의 칼날은 참가자나 심사위원이나 가리지 않는다.
‘쇼미더머니4’가 여성비하, 욕설, 비속어 가사 때문에 엄청난 욕을 먹고 논란에 휩싸일 때, 또 한 번 악마의 편집 논란이 머리를 들었을 때, 제작진은 속으로 ‘이것 참 큰일이군’이라고 생각할까? 글쎄, 모르긴 해도 프로그램이 논란을 일으킬수록 시청률이 올라가는 ‘노이즈 마케팅’에 제작진들은 속으론 웃고 있을 것 같다. ‘정도(바른 길)’, ‘권선징악’ 같은 키워드로는 도저히 ‘윗 사람’이나 ‘권력자’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도 ‘쇼미더머니4’나 우리 사회에서나 비슷하지 않나.
쇼미더머니4
매주 금요일 밤 11시10분 m.net
실력 있는 래퍼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등용문이 될 수 있도록 기획된 랩 서바이벌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쇼미더머니4’는 인터넷으로 톱16 스포가 미리 유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제작진은 ‘만일 출연자 중 누군가 내용을 유출한 게 밝혀진다면 곧바로 탈락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유출자가 누구인진 아직 아무도 모른다.
2) ‘쇼미더머니4’의 지난 17일 방송 시청률은 2.3%(닐슨코리아 기준)이었다. 케이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꽤 높은 편이다.
3) ‘쇼미더머니’ 시즌1의 우승자는 시즌4에서 현재 박재범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나오고 있는 로꼬였다. 시즌2는 소울다이브, 시즌3에서는 YG 소속의 아이돌 랩퍼 바비가 우승했다. ‘쇼미더머니’의 화제성이 폭발한 것도 지난 시즌에 아이돌 바비가 우승하면서부터였다.
방송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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