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받고 환자에 줄기세포 이식 제대혈은행ㆍ유통업체 압수수색해
경찰, 혐의 입증할 자료 다수 확보
난치병 치료에 쓰이는 ‘제대혈 줄기세포’가 당국 허가 없이 음성적으로 환자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제대혈 줄기세포를 환자들에게 불법 이식한 혐의로 서울 삼성동 L병원 등 강남 및 경기 분당 소재 병원 6곳에 대해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들 병원에 제대혈 줄기세포 치료제를 공급한 제대혈은행 H사와 제대혈 치료제 유통업체 수 곳을 압수수색, 혐의를 입증할 자료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특히 1년 넘게 내사를 진행하며 제대혈 줄기세포 전반의 비리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져,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L병원 등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제대혈 이식 지정 의료기관이 아닌데도 환자당 수백만원씩 받고 제대혈 줄기세포를 치료 목적으로 불법 이식해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제대혈은 신생아와 산모의 탯줄ㆍ태반 속에 있는 혈액으로, 이 속에는 연골, 뼈, 신경 등을 생성하는 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제대혈 줄기세포는 골수에 비해 이식이 쉽고 거부반응이 적어 백혈병 등 혈액암을 비롯해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현재 보건 당국은 2010년 제정된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 의료기관에서만 이식 치료를 허가하고 있다.
제대혈 치료 사용률은 0.07~1.3% 수준에 불과하지만, 난치병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액의 진료비를 지불하는 실정이다. 경찰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병원이 난치병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제대혈은행인 H사에 대해서도 불법임을 알고 치료제를 병원에 제공한 정황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미허가 제대혈 은행의 경우 질병관리본부를 통한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아 제대혈을 불법 반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문제가 된 6개 병원 외에도 서울 강남 등 여러 병원에서 치료제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어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대혈 치료 연구는 2000년대 초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이에 맞춰 제대혈 보관도 대중에게 소개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태아의 제대혈을 냉동 보관하다 본인이나 부모ㆍ형제에게 사용하는 ‘가족제대혈’은 2006년 18만5,200여명에서 2012년 37만 3,8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유전자 특성이 일치하는 다른 환자에게 자신의 제대혈을 기증하는 ‘기증제대혈’도 같은 기간 1만3,200여명에서 4만8,300여명으로 부쩍 늘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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