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복합 입주민들, 공용도 독차지
비상계단ㆍ주차장은 잠금ㆍ차단까지
주민들 행태 풍자 노랫말 나붙고
상인-입주민 물리적 충돌로 번져
현행법상 합의 말곤 분쟁 해법 없어
“같은 건물 엘리베이터 4대 중 3대는 강남 사는 부자만 전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네 / 강남 사는 부자는 엘리베이터를 쇠때로 잠가 놓고 자신들만 사용하네 / 같은 건물 영세상인은 1대만 사용해도 충분하다고 하네. (후략)”
1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S주상복합 건물 벽면에 고대가요 형식을 빌린 패러디 노랫말이 붙었다. 4절로 이뤄진 노랫말에는 이 건물 아파트 입주민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내용이 담겼다. 궁금한 ‘강남 가요’ 사연의 전말은 이랬다.
S주상복합은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로 2007년 준공됐다. 현재 지하 2층~지상 3층은 41개 점포가 입점한 상가로, 지상 4층~20층은 거주지(아파트ㆍ96세대)로 사용되고 있다. 전용면적 111m2(33평형대)에 시세는 8억원대 안팎이다. 세대수와 입점 상가의 방문객 수요를 감안해 건물 내부에는 4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문제는 공용 엘리베이터 1대까지 아파트 입주민들이 전용하면서 불거졌다. 설계와 준공허가 당시 엘리베이터 4대 중 2대는 입주민이, 1대는 상인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1대는 공동 사용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공용 엘리베이터는 그 동안 아파트 측의 전유물이었다. 공유시설물로 분류됐지만 카드 키를 써야 만 출입 가능한 현관문이 세워져 상인들의 접근은 아예 차단됐다. 이로 인해 아파트 주민들은 3대의 엘리베이터를 전용으로 사용했고, 상인들은 1대만을 사용해야 했다. 게다가 공용 엘리베이터와 연결돼 있는 비상계단과 지하 5~7층 주차장, 옥상 정원 등 다른 공유시설에도 상인들 접근을 막는 잠금장치가 설치됐다. 8년간이나 이를 참아내야 했던 상인들이 이번에 현대판 ‘강남 가요’를 만들어 비꼰 것이다. 상가관리단 관계자는 “입주민이 공유시설을 독점하는 것은 강남 부자들의 ‘갑(甲) 질’ 아니냐”며 “심지어 상인들이 낸 관리비가 공유시설을 유지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정황도 보인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입주자 측 입장은 다르다. 입주자 대표회의 관계자는 “애초 입주할 때부터 시공사와 엘리베이터 3대를 쓰는 조건으로 계약한 만큼 상가 측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공방은 급기야 물리적 충돌로 번졌다. 지난 15일 상가관리단이 강제로 잠금장치를 해제하자 입주자대표회의는 이들을 재물손괴죄로 경찰에 신고했다. 상가 측도 상가관리단의 입장을 담아 게재한 안내문을 뗀 입주자를 같은 혐의로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상가와 입주자 관계자 각각 1명이 폭행과 재물손괴의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주변 상인들은 공유시설의 관리 주체를 놓고 가열되는 양측의 설전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한 상가 관계자는 “공유설비에 잠금장치를 해놓으면 화재 등 사고 발생시 대피가 원천봉쇄 된다”며 “비상용 이동경로에까지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주자들의 주장은 월권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행법 상 이 같은 갈등을 풀 방안은 어디에도 없다. 비상용 승강장으로 통하는 출입구에 잠금 장치를 달거나 특별피난 계단을 임의로 폐쇄하면 과태료를 부과하게끔 소방법에 명시돼 있기는 하다. 문제는 150세대 이하가 거주하는 주상복합은 분쟁이 생길 경우 자체 관리주체의 상호 협의 하에 자구책을 강구하도록 한 점이다. S주상복합처럼 입주민과 상가 측이 서로 관리 권한을 주장하면 사실상 해법이 없는 셈이다. 잠금장치를 해제한 사안을 두고도 입주자들은 “지방자치단체의 시정명령 없이 강제력을 동원해 불법을 저질렀다”는 입장인 반면, 상인들은 “상가관리단의 적법한 권리 행사”라며 맞서고 있다. 관할 구청 측은 “주택 관련 분쟁은 소송으로 가면 몇 년씩 걸리고 생계에도 막대한 지장을 줄 수 있어 가급적 합의를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공유시설을 둘러싼 주민과 상인들의 다툼은 경찰 소관이 아니다”면서 “양측이 원만하게 타협점을 찾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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