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ㆍ소방당국 신고 받자마자 수색
특정기관서 정보 얻었을 가능성도
자신의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45)씨는 20여 년을 사이버안보 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로 알려진다. 전북 이리 지역 고교를 졸업하고 전북 모 대학교 전산과를 졸업했고, 국정원 입사후 줄곧 이 분야에서만 일했다고 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 구입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임씨가 집을 나간 뒤 사체로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가 숨진 채 발견되기 전 용인 자택을 나선 건 18일 오전 5시쯤이다. 부인은 5시간여 뒤인 이날 오전 10시4분과 11시쯤 두 차례 “남편이 출근한다고 나간 이후 10여 차례 전화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사고가 의심된다”며 119에 신고를 했다. 국정원 직원이 불과 5시간 가량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이 실종신고를 한 배경에는 임씨의 신변 이상을 감지할 만한 정황이 있었을 개연성도 점쳐진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가족의 신고를 받자 마자 위치추적과 수색에 나선 점도 미심쩍다. 실종 신고를 받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야 본격 수사에 들어가는 통상적인 경찰 수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전에 특정 기관 등으로부터 임씨의 신변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벌여 낮 12시2분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한 야산 중턱에서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져 있는 임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인계했다. 당시 그는 집을 나설 때와 마찬가지로 바지와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차량 안 뒷좌석과 조수석 위에 놓인 알루미늄 포일 위에서는 다 탄 번개탄이 나왔다. 임씨의 차량이 확인된 곳은 집에서 13km가량 떨어진 인적이 드문 곳이다.
경찰이 19일 공개한 임씨 유서 일부에서는 그의 업무분야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 드러난다. 차량 조수석에서 발견된 유서는 가로 줄이 그어진 A4 용지 크기의 노란색 기록용지(리걸패드) 3장 분량이다. 파란색 볼펜으로 쓴 글씨는 임씨의 자필인 것으로 부인 조사결과 확인됐다.
경찰이 유족을 설득한 끝에 외부에 공개한 유서 한 장은‘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로 시작한다. 임씨는 여기에서“내국인,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관련된 업무가 민간인 해킹 의혹 등으로 확산되자 결백함을 호소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유족의 거부로 경찰이 공개하지 않은 나머지 유서 두 장에는 가족, 부모에게 전하는 유언이 담겼다. 임씨는 두 딸을 둔 가장으로, 큰 딸은 사관학교에 재학 중이고 막내 딸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부인과 자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결과 임씨는 최근 “업무적으로 힘들다”라고 부인에게 토로하는 등 해킹 프로그램 구입 문제로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임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경찰은 임씨의 사망 전 동선과 번개탄 구입 과정 등을 조사한 뒤 별다른 의문점이 나오지 않으면 임씨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용인 평온의 숲에 빈소를 차린 임씨 유족들은 시신에 대한 인계 절차가 끝나는 대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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