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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익을 생각하는 올바른 자세

입력
2015.07.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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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말리는 싸움이었다. 합병을 저지하려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세는 집요했고, 이를 뿌리치려는 삼성은 필사적이었다. 50여일간 긴 싸움의 승자는 결국 삼성.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수순이었다는 점에서 그 절박함의 무게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끝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 외국자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최악의 상황을 비껴갔다는 점에서 참 다행스럽다.

이제 논의는 자연스레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으로 옮겨 붙을 것이다. 싸움 과정에서 부단히 제기돼 온, “헤지펀드에게 번번이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 분명하다. 자식이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고 온다면, 뭐가 됐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나서는 건 당연하니까.

그런데 이 논의의 밑바탕에는 국내 기업과 해외 헤지펀드가 벌이는 싸움을 뚜렷한 선악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깔려있다.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은 이렇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국내 기업은 선이고, 차익을 노리며 남의 나라 대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펀드는 악이다. 그러니 헤지펀드는 어떻게든 물리쳐야 할 공공의 적이다. 실제로 이번 싸움에서 엘리엇을 물리친 것은 국익과 애국심을 기치로 국내 주주들이 똘똘 뭉친 결과였다.

이런 선명한 흑백, 선악 구도는 남들 보는 앞에서는 온갖 착한 척하며 뒤에서는 걸핏하면 주인공을 함정으로 내모는 악녀가 등장하는 TV 드라마거나 콩쥐팥쥐나 흥부전 같은 고전동화 속에서나 적합하다.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펀드의 속성은 돈을 버는 것이다. 법이 허용하는 한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허용하는 것, 그게 자본주의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적대적이겠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우호적일 수 있다. 일부 소액주주들이 굳이 엘리엇 편에 선 것도 착각이든 실제든 그들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약점만 파고들기에, 그것도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을 공격하기에 참 얄미운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악으로 몰아세울 수는, 세워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지펀드=악’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우리 정부가 ‘한국형 헤지펀드’ 육성에 목 말라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오너 경영은 무조건 나쁘고 주주 자본주의는 모두 옳다는 그 반대의 선악 프레임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주주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주이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이해 당사자 중에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제일 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주장(‘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처럼 언제든 치고 빠질 수 있는 헤지펀드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 또한 한 눈을 가리기는 마찬가지다. 호불호가 선악의 기준이 아니라는 말이다.

국내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주요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약점, 즉 비합리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많다는 얘기다. 엘리엇의 공세는 적은 지분으로 거대 기업을 지배하고, 이런 지배구조를 적절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 대물림하고, 그러면서도 주주들에게는 인색한 국내 재벌의 ‘민낯’을 노출시켰다.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기업의 비효율성이 제거되고 투명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순기능도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삼성이 뒤늦게 나마 미약하나마 이런저런 주주친화 정책이나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내놓은 것은 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삼성이, 현대차가, SK가, 또 LG가 헤지펀드의 공격이 비집고 들어올 틈 없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도록 독려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높은 장벽(경영권 방어 수단)을 쳐주는 것이 필요한지, 어떤 수단이 바람직한지 논의하는 건 그 다음 수순이어야 한다. 그게 국익을 생각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믿는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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