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기회와 배달 주문은 느닷없이 몰려온다고 했다. 준비된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다. 2009년 프로에 뛰어든 유희관(29ㆍ두산)은 입단 5년째인 2013년 불쑥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규시즌부터 포스트시즌까지 과할 정도의 많은 기회를 모두 낚아챘다. 그 해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한 그는 5월4일 잠실 LG전에서 생애 첫 선발승을 따냈다. 5월28일부터는 당당히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해 시즌 10승7패, 3.53의 평균자책점을 찍었다. 이후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4차전 승리 투수가 됐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 선발 투수의 중책을 맡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어느덧 유희관은 리그 정상급 왼손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30경기에서 12승9패, 올해는 전반기에만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 18경기에서 12승(2패)으로 당당히 다승 단독 1위이다. '투수의 최고 덕목은 제구다'는 명제 앞에서 유난히 빛나는 유희관을 지난주 잠실구장에서 만났다. 학창시절 국영수 중 국어가 가장 좋았다는 그는 이날도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다.
-전반기에만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다. 기분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개인 성적은 물론 팀 성적도 좋아 기쁨이 두 배다. 작년에 이뤘던 한 시즌 개인 최다 12승을 전반기에 이뤄내 뜻 깊다."
-올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비결은.
"마운드에서 나름 강약 조절을 하고 있고, 집중력도 좋아진 것 같다. 작년까지는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는데 캠프 때부터 죽도록 연습해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왼손 타자는 물론 오른손 타자에게도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지고 있다. 상대 타자 입장에서는 잘 안 던지던 공이 들어오니깐 아무래도 헷갈리지 않을까. 무조건 세게 던진다는 생각을 버린 것도 큰 변화다. 70~80%의 힘으로 던진다거나, 직구 스피드에 변화를 준다거나, 완급 조절을 하려 한다."
-제구 얘기를 좀더 해보자. 몇 개의 공을 똑같이 연속해서 던질 수 있나. 일부에서는 포수 미트가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그 곳에 연속해서 2개만 던져도 제구가 좋은 투수라고 하더라.
"컨디션이 좋을 때는 10개 중 7, 8개는 정확히 같은 곳으로 던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웃음)"
-공은 빠르지 않지만 제구가 좋은 후배들인 kt 정대현, 두산 허준혁 등에게 '제2의 유희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럴 땐 기분이 어떤가.
"세상이 좀 많이 변하지 않았나 싶다. 스피드 만큼 제구가 각광받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좀 큰 것 같기도 하고. (웃음) 한국 프로야구에 새 트렌드를 제시한 것 같아 기쁘다. 처음 '제2의 유희관'이란 표현을 봤을 때는 뿌듯했다. 또 자부심도 생겼다. 앞으로 그런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나도 열심히 하겠다."
-쉬는 날엔 주로 뭐 하나. 밥을 같이 먹는 선수가 있나.
"야수 중에는 (김)현수랑 워낙 친하고, 투수 가운데는 (장)원준이 형과 가깝게 지낸다. 원준이 형과는 대학교 때부터 좀 알았던 사이다. 솔직히 처음 원준이 형이 우리 팀에 온다고 했을 때는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검증된 투수가 오니 팀 전력이 상승해 반가웠지만 냉정하게 보면 경쟁해야 하는 상대였다. 같은 왼손에다 선발로 보직도 같고. 그런데 원준이 형이 워낙 착하고 심성이 고와 금방 친해졌다. 무엇보다 둘 다 시끄러웠으면 서로 말하기 바빴을 텐데 내가 거의 말하고 원준이 형은 들어주는 편이라 잘 맞는다. 평소 원준이 형이 마운드에서 보이는 침착성을 배우려 하고 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사진=두산 유희관. 잠실=임민환기자 limm@sporbiz.co.kr
잠실=함태수 기자 hts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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